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허스토리(2018) 법정에서 외친 역사, 여성들의 싸움

by 취다삶 2025. 12. 15.

허스토리(2018)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법정투쟁을 다룬 실화 기반의 영화로, 피해 여성들의 용기와 이를 지지한 민간인의 연대, 그리고 ‘증언’을 넘어선 ‘행동’의 중요성을 조명하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실재했던 ‘관부 재판’을 배경으로, 피해자들이 일본 법정에서 겪는 굴욕과 투쟁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립니다. 단순한 고발 영화나 다큐멘터리식 서술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감정선과 역사적 진실, 법정 드라마의 긴장감을 결합해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합니다. 특히 피해자의 ‘스토리’가 아닌, 그녀들의 ‘허스토리(Herstory)’라는 제목처럼, 이 영화는 남성 중심 서사로 가려졌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영화가 다룬 재판의 실체, 피해자와 연대자의 변화, 그리고 이 영화가 한국 사회와 국제 인권 문제에 던지는 메시지를 심도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허스토리(2018) 포스터 사진
허스토리(2018)

 

법정에서 외친 역사, 여성들의 싸움

영화 허스토리는 1990년대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진행된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 정부 상대 재판, 일명 ‘관부 재판’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관부 재판은 국가 차원의 외교나 사법적 구제가 아닌, 피해자들과 민간인들의 힘만으로 제기된 상징적 사건으로, 국제 인권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사례로 기록됩니다. 이 영화는 그 중심에 선 인물들—문정숙 사장(김희애 분), 피해자 배정길 할머니(김해숙 분), 곽순녀(예수정 분), 박순애(문숙 분) 등의 실제 피해자를 모델로 한 인물들—의 용기와 고통, 그리고 연대를 입체적으로 조명합니다. 문정숙은 부산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며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가진 인물이지만,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접한 뒤, 이들의 일본 재판 참여를 전적으로 지원하기로 결심합니다. 단순한 후원이나 기부를 넘어, 그녀는 자비를 들여 변호사를 고용하고, 피해자들을 조직하며, 직접 일본 법정까지 동행합니다. 영화는 이처럼 피해자 중심의 시각을 지키면서도, 이들과 함께한 연대자의 내면 변화와 갈등도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문정숙은 처음에는 선의로 시작했지만, 점차 재판 과정에서 마주하는 국가의 무관심과 사회의 냉대, 일본 측의 냉소에 분노하게 되며, 결국 그녀 자신이 싸움의 주체로 서게 됩니다. 한편, 피해자들의 증언은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영화 속 법정 장면은 극적인 연출 없이, 있는 그대로의 증언을 담담하게 보여주지만, 그 감정의 밀도는 압도적입니다. 배정길 할머니가 일본 법정에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또박또박 증언하는 장면, 곽순녀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혼절하는 장면 등은 관객의 숨을 멎게 할 정도로 강력한 정서적 충격을 줍니다. 이 증언들은 단지 개인의 과거가 아닌, 국가에 의해 은폐되고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복원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피해자들이 더 이상 피해자로 남지 않고, 역사의 주체로 전환되는 계기입니다. 또한 영화는 증언이 갖는 정치적, 문화적, 심리적 의미를 동시에 다룹니다. 피해자들은 그동안 침묵을 강요당했고, 오랜 세월 부끄러움과 자책 속에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법정이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경험을 말하게 되면서, 이들은 개인의 삶을 넘어서 역사와 인권의 문제를 공론화하게 됩니다. 증언은 기억의 복원이자, 정의 실현의 시작이며, 이 영화는 그 과정을 매우 밀도 있게 따라갑니다. 재판은 쉽지 않습니다. 일본 정부는 소송을 각하하거나 피해자들의 증언을 부정하며, 법적 책임을 회피합니다. 영화는 이런 일본의 대응을 통해 ‘사과 없는 화해’는 무의미하다는 점을 명확히 합니다. 관부 재판에서 피해자들이 최종적으로 승소한 사건은 일부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승소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역사의 기록’입니다. 피해자들이 법정에 서서 목소리를 냈다는 그 자체가, 일본의 침묵과 부정에 맞선 상징적 행동이며, 영화는 이를 가장 가치 있게 다룹니다. 법정 밖의 이야기들도 놓치지 않습니다. 피해자들은 재판을 치르는 과정에서 과거의 트라우마와 다시 마주해야 하고, 가족과의 관계, 주변 사람들의 편견 등 여러 사회적 장벽에 부딪힙니다. 하지만 서로를 위로하고 지지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상처를 치유해갑니다. 영화는 여성들 간의 연대와 우정을 통해, 고통의 기억을 넘어서는 감정적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허스토리(2018)는 단지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침묵하던 여성들이 역사 앞에 당당히 나서서, 그들의 삶을 바로잡으려는 이야기이며,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인권 투쟁의 기록입니다. 이 영화는 말합니다. 법정에서의 싸움은 끝났지만, 진실을 알리고 기억하는 싸움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바로 그것이 ‘허스토리’의 의미입니다—그녀들의 역사, 그녀들의 목소리, 그녀들의 싸움입니다.

허스토리(2018)는 역사에 침묵당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되찾고, 법과 사회의 벽을 넘어선 용기 있는 증언을 통해 ‘기억의 정치’를 실현한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위안부 문제를 단지 피해의 서사로 머물게 하지 않고, 당사자들이 싸움을 통해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진정한 정의를 어떻게 실현해야 할지를 되묻습니다. 단순한 영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이 작품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여성들의 진실된 역사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