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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일의 밤(2021): 영적서사를 다룬 넥플릭스 영화

by 취다삶 2025. 10. 30.

넥플릭스 제 8일의 밤(2021) 포스터 사진
넥플릭스 제 8일의 밤(2021)

 

 

2021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제8일의 밤(The 8th Night)’은 한국 전통 불교 설화와 현대 오컬트 장르를 결합한 독특한 형식의 작품입니다. 겉보기엔 공포 스릴러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인간의 죄의식과 구원, 희생과 속죄라는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품고 있습니다. 특히 전통적 히어로물과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이 영화는, '영웅'을 초능력자가 아닌, 고통을 감내하고 진실을 직시하며 자기희생을 선택하는 인간으로 재해석합니다. 이 글에서는 제8일의 밤이 어떻게 ‘한국형 히어로물’로 정의될 수 있는지를 세 가지 핵심 키워드‘영적 서사’, ‘고통의 상징’, ‘구원과 선택’를 중심으로 분석합니다.

 

 

영적 서사: 전통과 현대를 잇는 히어로 구조

‘제8일의 밤’의 가장 큰 특징은 서사의 출발점이 불교적 세계관에서 비롯된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약 2,500년 전 붓다가 인간 세계에 큰 재앙이 될 존재, 즉 ‘붉은 눈’과 ‘검은 눈’을 봉인했다는 전설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초자연적 존재는 인간의 마음에 말을 걸어 지배하고, 그 결과 세상에 파괴를 불러옵니다. 이 설정은 단순한 공포 요소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어두운 욕망과 감정이 외부의 초월적 존재와 결합하여 현실을 파괴할 수 있다는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주인공 ‘진수’(이성민 분)는 과거에 큰 죄를 지었고, 그 죄를 속죄하기 위해 살아가는 불교 승려입니다. 그는 ‘붉은 눈’의 봉인이 풀리지 않도록 8일 동안 이를 막아야 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교적 의식, 주문, 금기의 경계들이 영화 전반에 녹아 있으며,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장치가 아닌, 인물의 심리와 윤리적 갈등을 형상화하는 매개체로 작동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영화의 히어로 구조가 초능력, 무력, 또는 기술이 아니라 ‘수행’과 ‘내면의 통찰’에 의해 전개된다는 점입니다. 진수는 과거의 실수와 트라우마를 안고 있으며, 이 죄의식을 끌어안고 싸움을 이어갑니다. 전형적인 히어로물이 외부의 악과 싸우는 데 중점을 둔다면, 제8일의 밤은 내면의 악과 싸우는 서사로 확장됩니다. 즉, ‘영웅’이란 초인적 존재가 아닌, 내면의 어둠과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자임을 이 영화는 강하게 주장합니다. 또한 영화의 시각적 연출과 상징물 역시 철저히 영적인 메시지를 내포합니다. 검붉은 눈, 망자의 도깨비 형상, 의식을 지키는 장면 등은 단순한 호러적 요소를 넘어, 인간이 범하는 죄와 그것을 씻기 위한 여정을 상징합니다. 이 영화의 세계관은 선과 악, 죄와 속죄의 경계가 명확히 그려져 있는 듯하면서도, 복잡한 인간의 감정과 선택 속에서 그 구분이 모호해지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결국, 제8일의 밤의 영웅은 인간을 구하는 구세주가 아닌, 스스로의 삶과 죄, 그리고 고통을 감당하며 최선의 선택을 하는 평범한 인물입니다. 그는 누군가를 위해 싸우기 이전에,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직시하고 그것을 끌어안는 용기를 선택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기존 히어로물의 공식에서 벗어나며, ‘한국형 히어로’라는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고통의 상징: 트라우마와 죄의식의 시각화

‘제8일의 밤’이 보여주는 두 번째 핵심은 고통을 하나의 캐릭터로 만드는 서사 방식입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다른 형태의 고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인공 진수는 과거의 결정으로 인해 한 아이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린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그의 눈빛, 말투, 행동 하나하나에 고통의 무게가 실려 있으며, 이는 영화 내내 묵직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합니다. 조력자인 청석(남다름 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버림받고 외면당한 상처를 지니고 있으며, 진수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아가게 됩니다. 청석은 단순한 조수나 후계자가 아닌, 진수의 과거와 고통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로 기능합니다. 그의 순수함과 상처받은 내면은 진수에게 또 다른 죄의식을 일깨우는 동시에, 변화의 가능성을 상징합니다. 영화는 이러한 개인적 고통을 단순한 배경 설정이 아니라, 이야기의 동력으로 전면에 내세웁니다. 고통은 단순히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겨내야 할 ‘시험’이자 ‘과업’입니다. 그리고 이 고통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인물들의 여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진정한 영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게 만듭니다. 특히 영화의 악령, 즉 붉은 눈과 검은 눈은 인간 내면의 고통이 외부로 표출된 존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타인의 고통을 먹고 자라며, 말 한마디로 사람을 파괴합니다. 이는 곧 말과 감정, 기억이 가지는 파괴력을 상징하며, 현대 사회에서의 정신적 상처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악령과의 싸움은 결국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입니다. 진수가 겪는 고통은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극도의 고독 속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에게 있어 싸움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자신을 미워하지 않기 위한 여정입니다. 그리고 이 여정의 끝에서 그는 마침내 자신을 용서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길을 터주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제8일의 밤이 말하는 고통의 의미이며, 그 고통을 감내하고 선택하는 자가 진정한 영웅이라는 주제의식입니다. ‘제8일의 밤’은 관객에게 ‘고통과 트라우마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끌어안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를 통해 영화는 보다 현실적인 히어로물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인간의 감정과 상처를 서사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진정성 있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합니다.

구원과 선택: 히어로의 본질에 대한 재정의

마지막으로, ‘제8일의 밤’은 구원이라는 주제를 통해 히어로의 본질을 재정의합니다. 일반적인 히어로물에서 구원이란 ‘타인을 구하는 행위’로 제한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자신을 구하는 것’, ‘과거를 바로잡는 것’ 또한 구원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진수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저질렀던 선택의 대가를 감당하며,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싸웁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타인을 구하는 결과로 이어지며, 이는 히어로의 정의를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이끕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진수는 자신의 삶과 청석의 미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그리고 그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청석을 살리고 자신은 소멸되는 길을 택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희생을 넘어선 ‘선택의 구원’을 상징합니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용서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바로 이것이 제8일의 밤이 말하는 구원의 본질입니다. 또한 영화는 인간의 의지와 감정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합니다. 구원은 신의 은총이나 외부의 힘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인간 중심의 서사를 강화합니다. 이는 기존 히어로물과는 확연히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며, 한국적 정서와 철학적 배경이 깊이 반영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수의 선택은 단순한 자기희생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고통과 죄를 안고 가는 방법이며, 누군가의 인생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새로운 인생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 주는 행동입니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히어로의 조건이 힘이나 기술이 아니라 ‘자기 성찰과 타인에 대한 배려’ 임을 강조합니다. 즉, 히어로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며, 그 선택이 곧 구원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8일의 밤’은 한국형 히어로물이 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서양의 히어로물이 외적인 힘과 갈등에 집중한다면, 이 영화는 내면의 선택과 구원이라는 동양적 가치에 초점을 맞추며, 히어로의 본질을 보다 인간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립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 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차별화될 수 있는 힘이며, ‘제8일의 밤’은 그 시작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8일의 밤’은 단순한 공포 영화도, 일반적인 히어로물도 아닙니다. 이 영화는 내면의 죄와 상처, 그리고 구원의 가능성을 통해 ‘영웅’이라는 존재를 새롭게 정의합니다. 초능력 대신 통찰과 수행, 전투 대신 선택과 희생을 이야기하며, 히어로물이라는 장르에 깊이를 더합니다. 한국의 전통과 철학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향후 한국형 히어로 콘텐츠가 나아갈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으며, 전 세계 관객들에게도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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