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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 멈춘 삶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가능성

by 취다삶 2025. 12. 30.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는 한 사람의 ‘삶이 멈추는 순간’을 정직하게 바라보며, 그 멈춤 속에서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내면의 작은 떨림들을 섬세하게 포착한 독립영화입니다. 오랜 시간 영화 프로듀서로 일해 온 찬실이라는 여성이 갑작스레 실직하고 삶의 방향을 잃은 채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실패와 상실, 자아 탐색과 관계 회복이라는 테마를 유쾌하면서도 따뜻하게 담아냅니다. 배우 강말금은 이 작품으로 데뷔 20년 만에 주연으로 발탁되어 찬실이의 감정을 극도로 자연스럽고 생생하게 연기해 냈으며, 이는 관객의 공감을 극대화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삶의 순간들을 통해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는 응원을 조용히 건네는 위로의 영화로 기억됩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 포스터 사진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

 

 

멈춘 삶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가능성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계획된 인생이 갑자기 멈췄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주인공 찬실이(강말금)가 오랜 세월 영화 프로듀서로 살아오다가, 함께 일하던 감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일자리를 잃으면서 시작됩니다. 그녀는 마흔을 넘긴 나이에 직업도, 미래도 없이 세상에 던져지고, 갑작스럽게 ‘백수’라는 낯선 정체성과 마주하게 됩니다. 영화는 그 낯선 현실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며, 찬실이가 겪는 혼란과 무력감, 자존감의 붕괴를 담담하게 따라갑니다. 찬실이는 자신이 좋아했던 일을 갑작스레 잃고, 과거의 경력조차 무용지물이 된 상황에서 삶의 방향을 잃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내적 고통을 극적인 사건이 아닌 일상 속의 사소한 장면들로 조명합니다. 이를테면,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사장님의 말 한 마디에 상처를 받거나, 친구와의 대화에서 스스로를 위축시키는 모습 등에서 우리는 찬실이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장면은 과장되지 않고 극히 사실적인 톤으로 연출되어, 관객이 그녀의 감정을 이입하기에 충분한 여지를 줍니다. 영화의 중요한 전환점은 찬실이가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조금씩 회복해 가는 과정입니다. 특히, 번역가 일을 하며 만나는 젊은 배우 소피(윤승아)와의 우정, 그리고 낭만적인 관심을 갖게 되는 청년 시인 영(배유람)과의 미묘한 감정선은 찬실이에게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들은 찬실이를 특별하게 대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녀가 스스로를 다시 보게 만드는 거울이 됩니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유령’ 캐릭터(김영민 분)는 찬실이의 내면을 형상화한 존재로, 그녀가 외면하려는 진짜 감정들을 대신 말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유령은 어딘가 익살스럽지만 동시에 진지하며, 찬실이에게 질문을 던지고 자극을 주며, 그녀가 마음속 응어리를 조금씩 꺼내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이처럼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현실과 환상, 사실과 상징이 교차하는 구조 속에서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를 섬세하게 추적합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영화가 ‘성공’이라는 이름의 기준에서 벗어나 찬실이 개인의 삶을 바라본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찬실이의 삶을 실패한 경력으로 소비하지 않고,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으로 그려냅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따뜻한 시선이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외부 기준이 아닌 내면의 목소리에서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삶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우리는 여전히 걸어갈 수 있고, 때로는 그 방향이 바뀌는 것이 더 나은 삶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소소한 일상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피어납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힘을 가진 영화이며, 삶이 멈췄다고 느끼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응원입니다.

관계 속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자신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주인공 찬실이의 내면 회복은 외부 사건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천천히 이루어집니다. 영화는 이 관계들을 단순한 서사적 장치로 쓰지 않고, 찬실이의 감정선과 맞물려 섬세하게 엮어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배우 소피입니다. 소피는 젊고 솔직하며 자기 감정에 솔직한 인물로, 찬실이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 둘은 일과 감정, 사람에 대한 진심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하며 점점 가까워집니다. 찬실이는 소피를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되고, 소피는 찬실이를 통해 일과 사람에 대한 존중을 배웁니다. 또한 시인 영과의 관계 역시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찬실이는 처음에는 그와의 관계에서 설렘을 느끼지만, 점차 그 설렘조차도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는 감정이라는 생각에 움츠러듭니다. ‘나 같은 사람도 사랑을 해도 될까?’라는 질문은 찬실이의 낮아진 자존감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동시에 많은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이 사랑을 비극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찬실이가 영을 통해 느끼는 감정은 로맨스 그 자체보다, 자신도 누군가를 좋아하고 설렐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각에 더 큰 의미를 둡니다. 그것은 곧 자기 수용의 시작입니다. 더 나아가 영화는 찬실이의 어머니와의 관계도 조심스럽게 그려냅니다. 어머니는 현실적인 조언을 하면서도 딸의 현재를 걱정하며 묵묵히 지켜보는 인물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갈등보다는 애틋함을 바탕으로 하며, 그 안에서 찬실이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영화는 가족이라는 관계마저도 따뜻하게, 그러나 현실적으로 풀어냅니다. 현실에 지친 딸과, 그 딸을 응원하는 엄마의 조용한 연대는 영화의 또 다른 축입니다. 찬실이 주변 인물들은 모두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며, 찬실이를 특별하게 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평범함이 찬실이에게는 위안이 되고, 또 다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끈이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일상 속 작은 존재’로서도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영화는 이 지점을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 관계들이 성장의 수단이 아니라, 성장 그 자체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찬실이는 이들 덕분에 자신이 실패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더 이상 누군가의 기준으로 살아가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관계를 통해 그는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용기를 내어 다시 세상에 나가기로 합니다. 그런 변화는 거창하지 않지만, 관객에게는 매우 강렬한 감정의 떨림으로 다가옵니다. 관계란 우리가 누구인지, 또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를 끊임없이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이 거울을 통해 주인공의 성장을 그려내며, 관객에게도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타인과의 연대가 어떻게 개인의 삶에 깊이 스며드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는 많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그 희귀한 영화 중 하나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가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조용히 전달합니다.

소소하지만 단단한 위로로 완성되는 삶의 회복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누군가의 성공 이야기도 아니고, 인생 역전을 꿈꾸는 드라마도 아닙니다. 오히려 실패와 멈춤, 좌절과 무력감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질문하고, 그 답을 거창한 서사가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순간에서 찾아내는 영화입니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 조용한 태도와 섬세한 시선입니다. 영화는 대단한 사건 없이도 사람의 내면을 흔들 수 있고, 웃음과 눈물이 절묘하게 어우러질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영화의 결말은 전형적인 해피엔딩이 아닙니다. 찬실이는 여전히 새로운 직장을 찾지 못했으며, 사랑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비하하지 않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영화는 그 점에서 찬실이의 가장 큰 변화는 외부가 아니라 ‘내면의 자세’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서사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됩니다. 우리는 흔히 ‘성공’을 기준으로 삶을 평가받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따라 존재의 의미가 결정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그런 통념에 정면으로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에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삶은 종종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틀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당황하고, 자신을 부정하며, 세상과의 관계를 끊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멈춰 있는 삶에도 충분히 아름다운 가능성이 있음을 말합니다. 그것은 누군가와의 짧은 대화일 수도 있고, 혼자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내느냐는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찬실이는 여전히 불안하지만, 분명히 달라져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현재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미래에 대해 기대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태도로 서 있습니다. 이 변화는 작지만, 아주 단단합니다. 그리고 이 단단함이 바로 관객에게 전해지는 위로입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는 우리 모두가 언젠가 겪을 수 있는 삶의 멈춤 앞에서, 어떻게 다시 걸을 수 있을지를 조용히 알려주는 작품입니다. 실패해도 괜찮고,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으며,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는 메시지를 정직하게 전하며, 한 사람의 작지만 아름다운 회복기를 통해 관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덮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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