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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감(2018) – 미성숙한 어른들의 진짜 성장 이야기

by 취다삶 2025. 12. 31.

어른도감(2018)은 가족의 죽음, 생면부지의 혈육, 그리고 갑작스레 함께하게 된 두 남녀의 이야기 속에서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조용하지만 진지하게 묻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보다도 더 낯선 ‘가족’이 어떻게 서로를 알아가고 변화하게 되는지를 독립영화 특유의 사실적이고 담백한 연출로 그려냅니다. 주인공 경훈 역의 엄태구와 지우 역의 이재인은 각기 다른 세대와 상처를 가진 인물로서 충돌하고, 밀어내고, 다시 다가가며 관계를 형성해 나갑니다. 영화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어른’의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어쩌면 미성숙한 상태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진짜 삶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어른도감(2017) 포스터 사진
어른도감(2017)

 

 

미성숙한 어른들의 진짜 성장 이야기

어른도감은 죽음으로 시작되는 영화입니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지우는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시점에서 아버지마저 교통사고로 잃게 됩니다. 장례식장에서 처음 보는 청년 경훈이 나타나 자신이 지우의 이복형이라 주장하면서 두 사람은 얼떨결에 동거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 설정은 단순한 가족 드라마나 성장 드라마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영화가 풀어내는 방식은 그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은 독립영화 특유의 진실함을 가집니다. 경훈은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미숙한 인물입니다. 그는 생활고에 시달리며 대포폰 판매와 허위 이벤트 모집 등 비정상적인 일로 생계를 유지합니다. 아이를 책임질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지만, 지우를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는 처음엔 지우를 이용하려고 접근했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점차 보호자의 역할을 고민하게 되고, 지우 역시 처음엔 경훈을 경계했지만 그 안에서 상처받은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되면서 미묘한 유대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 영화는 어른이란 '책임지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타인의 감정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라는 정의를 말없이 펼쳐나갑니다. 경훈은 무책임하고 즉흥적인 선택을 반복하지만, 지우와 함께하며 처음으로 누군가의 감정을 읽고, 배려하며, 조금씩 변화해 갑니다. 그 변화는 거창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지우가 아플 때 어설프게 챙기는 장면이나, 지우의 학교 상담에 따라가 괜한 허세를 부리는 모습 등은 '불완전한 어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동시에 그의 진심도 함께 드러냅니다. 지우는 그 나이에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래보다 성숙해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보호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아빠를 잃고 갑자기 나타난 낯선 형과 살아야 한다는 상황은 그녀에게 감정적으로 큰 혼란을 안겨주지만, 지우는 그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이 영화에서 지우는 단순히 피해자도, 보호받아야 할 대상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녀는 때로는 경훈보다 더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며, 관계에서 균형을 맞추는 인물입니다. 어른도감은 ‘성장’이란 말이 꼭 미성년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른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여전히 성장하고 실수하며 배워나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경훈은 지우를 통해 인생에서 처음으로 ‘진심을 다해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경험을 하게 되고, 지우는 경훈과의 관계 속에서 가족의 새로운 형태를 받아들이며, 세상에 대한 희망을 조금씩 다시 품게 됩니다.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어른이란 완성된 존재가 아니며,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고 선언하는 사람이 아니라, 비로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함께 성장하려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그런 불완전한 어른들의 진짜 성장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러나 깊이 있게 그려냅니다.

 

 

가족의 정의를 다시 묻는 감정의 여정

어른도감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가족’이라는 개념에 깊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지우와 경훈은 법적으로 가족이라 하기에도 애매하고, 감정적으로는 더더욱 낯선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 낯선 관계 속에서 이들은 혈연보다 더 깊고 단단한 유대를 만들어 가며, 관객에게 가족이라는 개념이 과연 무엇으로 구성되는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영화는 혈연이 곧 가족이라는 단순한 공식을 해체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를 돌보고,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경훈은 처음엔 지우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생각만으로 접근했지만, 점차 자신의 행동이 지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됩니다. 그는 서툴고 어리숙한 방식으로 지우를 챙기기 시작하고, 지우 역시 경훈의 진심을 느끼면서 조금씩 마음을 엽니다. 두 사람이 함께 라면을 먹고, 함께 길을 걷고, 같이 잘 곳을 찾아 다니는 과정은 단순한 동행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영화는 이 일상의 순간들 속에서 가족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다시 써 내려갑니다. 지우는 어른들보다 더 어른스러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경훈이 책임을 회피할 때, 지우는 차분하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의연한 태도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모습 뒤에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 숨어 있습니다. 경훈은 이 감정을 비로소 알아차리면서, 자신이 지우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또한 영화는 이들 사이의 감정선을 너무 감상적이지 않게, 절제된 연출로 담아냅니다. 울음을 터뜨리거나, 감정의 고조를 배경음악에 의존하지 않고, 인물들의 눈빛과 대사, 행동을 통해 감정을 전합니다. 이러한 연출은 영화의 진정성과 현실감을 높이며, 관객이 그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실제로 많은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며 ‘나도 저런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평가합니다. 이는 단지 이야기의 구조 때문이 아니라, 영화가 전달하는 진심과 리얼리티 덕분입니다. 가족은 혈연, 결혼, 법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책임감과 감정의 공유에서 시작됩니다. 어른도감은 이러한 가족의 본질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다양한 형태의 가족 관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경훈과 지우의 관계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 어떤 가족보다도 진정성 있고 따뜻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경훈은 결국 ‘가장이 된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로서의 가족. 그 안에서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다’는 감정을 갖게 되고, 그것이 곧 그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지우 역시 경훈을 통해 보호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배우며,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법을 익혀갑니다. 영화가 마지막에 보여주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그들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신뢰와 정이 자리 잡았습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단순한 정의가 아니라, 그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 자체에 있다는 것을 영화는 조용하지만 강하게 전달합니다.

 

 

불완전한 관계 속에서도 피어나는 연대와 위로

어른도감의 진정한 힘은 인물들이 완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성장하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경훈은 어른이지만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인물입니다. 지우는 어린아이이지만, 감정적으로는 경훈보다 훨씬 단단하고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둘의 관계는 처음에는 삐걱거리지만,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연대’의 형태로 발전합니다. 영화는 이 연대를 의도적으로 영웅화하거나 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편하고, 때로는 실망스럽고, 갈등이 반복되는 현실적인 관계를 보여줍니다. 이처럼 이 작품은 ‘이해’보다 ‘인정’이 더 먼저 오는 과정을 통해 관객에게 깊은 감정적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때로 서로를 이해할 수 없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영화는 아이와 어른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무력화합니다. 지우는 때로는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고, 경훈은 종종 아이처럼 감정에 솔직합니다. 그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단순한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가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주는 관계입니다. 그 거울을 통해 각자는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하고, 조금씩 어른이 되어갑니다. 이 모든 과정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방식으로 그려지며, 관객의 마음속에도 긴 여운을 남깁니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이 영화가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관계가 어디로 향할지, 이들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끝까지 불투명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 미완성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삶이란 본래 그렇게 불완전한 것임을 인정하게 합니다.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은 누군가와 완벽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른도감은 바로 이 점에서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합니다. 이 영화는 소리치지 않고, 화려하지 않으며, 극적인 반전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도 ‘진심’이 담겨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조용히 일깨워 줍니다. 현실적인 인물, 현실적인 대사, 현실적인 감정들이 모여 만든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는 ‘어른이 되는 법’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른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안을 줍니다.

어른도감(2018)은 누군가를 책임지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통해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의 서툰 성장기이자,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관계, 연대를 따뜻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위로이자 공감의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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