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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2021): 주인공의 연대와 인간성을 토대로 한 한국SF영화

by 취다삶 2025. 10. 29.

2021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승리호(Space Sweepers)’는 한국 최초의 본격 우주 SF 블록버스터로, 장르적 실험과 기술적 성취를 동시에 이룬 작품입니다. 송중기, 김태리, 진선규, 유해진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화려한 볼거리뿐만 아니라, 인간성에 대한 깊은 질문과 연대의 가치를 함께 담아냄으로써 기존의 히어로물과 차별화된 ‘한국형 히어로물’로 주목받았습니다. 특히 승리호는 전형적인 초능력 히어로나 초월적 영웅 대신, 사회의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선택과 연대로 위기를 극복하는 구조를 취하며, 현실적인 인간 드라마를 SF라는 틀 속에 성공적으로 녹여냈습니다. 본 글에서는 승리호가 한국형 히어로물로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비영웅적 주인공들의 연대’, ‘기술과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 맞선 인간성’, 그리고 ‘한국형 SF 세계관과 문화적 의미’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분석합니다.

 

 

비영웅적 주인공들의 연대: 영웅이 아닌 사람들이 만드는 선택의 힘

승리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주인공들이 전혀 ‘히어로답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결핍과 실패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입니다. 주인공 태호(송중기)는 전직 UTS 우주 방위대 출신으로, 전쟁에서 민간인을 구하다 딸을 잃고 모든 것을 잃은 인물입니다. 그는 생존을 위해 쓰레기 수거선 승리호에 탑승해 우주 쓰레기를 주우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장선장(김태리)은 냉철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리더로, 과거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전력으로 지명수배자 신세입니다. 타이거 박(진선규)은 과거 테러범으로 낙인찍힌 인물이지만, 실은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온 활동가입니다. 그리고 업동이(유해진 성우)는 감정을 지닌 AI 로봇으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유머와 감정을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이들은 모두 사회에서 밀려난 ‘낙오자’이며, 어떤 면에서는 도덕적으로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초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정의감 하나로 뭉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이 우연히 발견한 소녀형 안드로이드 ‘도로시’를 보호하려는 과정에서, 점차 연대의 의미를 자각하게 됩니다. 도로시는 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무기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인간성을 지닌 순수한 존재입니다. 처음에는 도로시를 팔아 돈을 벌려했던 이들이, 점차 도로시를 통해 잊고 있었던 인간적인 감정—부성애, 책임감, 동료애—를 되찾아가며 진정한 ‘영웅적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전개는 ‘영웅이란 누가 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승리호의 주인공들은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사회적으로는 실패자이지만, 결정적인 순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선택’을 통해 영웅이 됩니다. 이는 영웅성을 초능력이나 지위, 명예가 아닌 선택과 용기로 정의하는 새로운 히어로 서사로 읽힐 수 있으며, 현실의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이들의 관계는 혈연이나 명분에 기반하지 않고, 상처받은 이들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감정의 교류를 통해 형성됩니다. 특히 태호가 도로시에게 느끼는 감정은 죽은 딸에 대한 그리움과 연결되며, 이는 복수나 정의보다 더 인간적인 동기에서 출발합니다. 이러한 감정선은 관객들에게 히어로 서사를 훨씬 더 현실적으로 전달하며, SF 액션이라는 외피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 드라마를 구현해 냅니다. 연대와 선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승리호는 영웅의 의미를 확장하고,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기술과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 맞선 인간성의 회복

승리호의 배경은 2092년, 지구는 대기 오염과 환경 파괴로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공간이 되었고, 엘리트 집단만이 UTS라는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인공위성 도시에서 살아갑니다. 이 사회는 자본과 기술이 인간의 생존 자체를 관리하는 구조로, 사실상 기술 독재 사회입니다. UTS의 대표 설리반은 인간 유전자를 관리하고, 생존권을 상위 5%의 인류에게만 부여하려 하며, 나머지는 쓰레기를 수거하며 연명해야 하는 ‘버려진 계층’으로 남게 됩니다. 이러한 구조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극단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며, 히어로물 속 설정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합니다. 도로시는 이런 사회 구조에 반기를 드는 존재입니다. 표면적으로는 파괴 무기이지만, 실제로는 설리반의 유전자 조작 실험의 부산물이며, 자의식을 가진 존재로 자라납니다. 그녀는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고, 감정도 표현합니다. 인간이 만든 기술이 인간성을 갖게 되었을 때, 진정한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행동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구조가 도로시를 통해 구현됩니다. 설리반은 도로시를 제거하고 인류를 재설계하려 하지만, 승리호의 선원들은 그녀를 지키기 위해 나섭니다. 이는 단순히 한 아이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기술에 의해 통제된 사회를 거부하고, 인간성을 지키려는 선택으로 읽힙니다. 이 과정에서 승리호 선원들은 각자의 상처를 극복하고, 인류의 미래를 위한 싸움에 나섭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행위는 기존 체제를 뒤흔드는 도화선이 되며, 진정한 정의는 시스템의 승인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또한 영화는 로봇과 인간의 경계를 허물며, 인간성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업동이는 인공지능 로봇이지만, 타인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줄 알고, 감정을 공유하며, 인간보다 더 윤리적인 행동을 보여줍니다. 이는 인간성을 ‘생물학적 특성’이 아닌 ‘도덕적 선택’으로 규정짓는 해석이며, 현재의 인공지능 시대와도 연결되는 철학적 담론을 포함합니다. 이처럼 승리호는 SF라는 형식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이야기를 풀어내며, 자본과 기술이 인간보다 우위에 설 수 없는 이유를 감정적으로 설득합니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적 쾌감뿐 아니라 정서적, 윤리적 울림을 함께 경험하게 하며, 히어로물의 가치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립니다.

한국형 SF 세계관과 문화적 정체성의 통합

승리호가 한국형 히어로물로서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서사와 메시지가 단순히 할리우드의 틀을 따라가지 않고, 한국 고유의 정서와 세계관을 바탕으로 구축되었다는 점입니다. 우선, 영화의 주제는 ‘가족’, ‘희생’, ‘연대’와 같은 전통적인 한국 사회의 가치관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태호가 도로시를 딸처럼 느끼며 끝까지 보호하려는 동기는 한국적 정서에서 매우 익숙한 ‘부성애’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장선장이 과거의 실패를 극복하고, 동료들과 함께 정의를 실현하려는 과정 역시 ‘공동체적 책임감’이라는 한국 문화의 특성을 반영합니다. 뿐만 아니라, SF라는 장르적 외피를 입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갈등 구조는 현대 한국 사회가 직면한 현실 문제들과도 닮아 있습니다. 청년 실업, 계층 간 불평등, 기술 편향성, 기후 위기 등은 영화 속 미래사회에서 극단적으로 구현되어 있으며, 이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소재입니다. 하지만 그 해법과 정서적 결말은 한국적인 방식으로 처리됩니다. 전투와 승리보다는 감정의 공유, 공감, 그리고 희생을 통한 구원이 중심이 됩니다. 또한 영화는 언어, 문화, 행동 방식에 있어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인물들이 등장하면서도, 한국어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이는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고 서사를 끌고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실제로 승리호는 넷플릭스 공개 직후 전 세계 다수 국가에서 인기 콘텐츠 상위권에 오르며 그 잠재력을 입증했습니다. 기술적으로도 승리호는 한국 영화 산업이 SF 장르에서도 경쟁력을 갖췄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입니다. 세밀한 CG와 우주선 내외부의 디테일, 무중력 액션 시퀀스, 로봇 캐릭터의 구현 등은 기존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완성도를 자랑하며, 한국형 SF의 미래를 밝게 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는 향후 후속작 제작이나, 한국형 SF 유니버스 확장의 기초가 될 수 있으며, 히어로 장르의 프랜차이즈화 가능성도 엿보이게 합니다. 승리호는 이처럼 한국적 가치관과 글로벌 장르 문법을 융합한 결과물이며, 감정과 서사, 기술이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서 한국형 히어로물의 확장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흐름이 지속된다면, ‘K-히어로’라는 새로운 장르가 세계 콘텐츠 시장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승리호는 영웅이란 완벽한 능력이나 지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끌어안고도 누군가를 위해 선택하는 인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진정한 ‘한국형 히어로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비영웅적 인물들의 연대,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투쟁, 그리고 한국 고유의 문화적 정서가 결합된 이 작품은 장르를 넘어선 감동과 메시지를 전하며, 앞으로 한국 SF와 히어로물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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