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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2016)의 생존 본능과 인간성 시험

by 취다삶 2026. 2. 10.

‘부산행(2016)’은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 영화이자, 한국형 좀비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영화는 좀비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된 가운데,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고속열차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생존 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은 단순한 좀비 아포칼립스가 아닌,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사회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장르적 재미와 사회적 메시지를 동시에 담아낸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명백한 주제 아래, 이기심과 희생, 불신과 연대가 교차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빠른 전개, 감정의 진폭, 휴머니즘적 결말까지, ‘부산행’은 장르적 쾌감과 철학적 메시지를 절묘하게 결합한 수작이다.

 

부산행(2016) 포스터 사진
부산행(2016)

 

 

 

 

좀비 재난 속 생존 본능의 진화와 본질

‘부산행’의 서사는 어느 날 갑자기 터져 나온 좀비 바이러스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KTX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생존극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주목할 점은, ‘좀비’라는 존재가 단순한 괴물이 아닌, 인간의 생존 본능을 거울처럼 비추는 존재로 설정되었다는 점이다. 이 좀비들은 감염 즉시 인간성을 잃고 폭력성과 본능만으로 움직이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맹목적인 행동은 극한 상황 속 인간들이 보여주는 이기심과도 닮아 있다. 생존 본능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자 반응이다. ‘부산행’은 좀비보다 더 위험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 자신임을 끊임없이 보여주며, 그 본능이 어떻게 발현되고, 진화하며, 충돌하는지를 극적으로 묘사한다. 주인공 석우는 처음엔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오직 자신과 딸 수안만의 생존을 위해 행동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기보다는 이기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그 선택들이 결국 타인의 생존을 위협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타인의 희생과 연대를 보며,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단순히 생명이 아닌 ‘사람됨’임을 깨닫는 것이다. 반면, 영화 속 또 다른 중심 인물인 용석(김의성 분)은 끝까지 이기심에 충실한 인물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고, 공포를 선동하며 집단을 분열시킨다. 그가 보여주는 생존 본능은 이타심이 배제된 극단적인 자기 중심성으로, 결국 그 자신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까지 위험에 빠뜨린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 영화는 생존이라는 조건 하에서도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고찰한다. ‘부산행’의 좀비는 무차별적이고 빠르며, 감염의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위기 상황이 얼마나 빠르게 통제불능으로 번질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바이러스가 한 칸에서 다른 칸으로 번져가는 장면들은 정보나 공포가 현대 사회에서 퍼져나가는 방식과 유사하다. 감염된 자는 곧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히고, 비감염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점점 더 닫힌 공간으로 모여든다. 이는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현실과도 닮아 있다. 결국 영화는 생존 본능이 반드시 비도덕적이거나 파괴적이지는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석우처럼 변화하는 인물은 자신의 본능을 타인의 생존과 연결시키며, 공동체를 위한 희생을 선택한다. 반면 용석처럼 자기 보호만을 우선시한 인물은 최후의 순간에도 누구로부터도 구원받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사라진다. 이러한 설정은 생존이라는 본능이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느냐에 따라 인간의 도덕성과 공동체성이 유지될 수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부산행’은 단지 좀비와의 싸움이 아니라, 인간 본능과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매우 철학적인 재난 영화라 할 수 있다.

 

이기심과 연대의 경계에서 드러난 인간성

‘부산행’은 위기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선택을 통해, 인간성의 본질을 탐구한다. 영화는 극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주며, 이기심과 연대, 공포와 희망, 절망과 용기의 교차점을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이란 과연 무엇으로 규정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영화 초반, 기차에 탑승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이 존재한다. 그들은 단지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익명의 존재들일 뿐이다. 하지만 좀비가 등장하고, 재난이 시작되면서 이들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이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감정은 ‘두려움’과 ‘불신’이다. 용석은 이 두 감정을 교묘히 이용해 사람들을 조종하고, 객실 문을 닫아 타인을 배척한다. 그는 “감염될지 몰라, 저 사람들도 위험해”라는 말을 반복하며 두려움을 확대 재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공동체 구성원이 아닌, 서로를 경계하는 ‘타자’로 전락한다. 그러나 그와 반대되는 인물들도 있다. 상화(마동석 분)와 성경(정유미 분) 커플은 처음부터 타인을 보호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상화는 강한 힘을 이용해 좀비를 물리치며, 타인의 생존을 위해 싸우고, 성경은 아이와 노약자들을 챙기며 공포 속에서도 인간적인 모습을 잃지 않는다. 이들의 행동은 생존만이 목적이 아닌, 살아남더라도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이들은 단순한 선한 인물이 아니라, 공동체적 책임을 실천하는 이들로 그려지며,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서 석우는 자신의 이기적 선택이 결국 타인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상화의 죽음, 딸의 슬픔, 자신을 향한 비난을 통해 진정한 연대의 의미를 이해하고,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딸과 임산부를 구한다. 이는 인간성이란 단순히 선천적으로 주어진 성질이 아니라, 선택과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재난 속에서 인간이 보여주는 선택은 언제나 극단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산행’은 그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연대를 선택한 인물들이 존재했음을 강조하며, 인간이 단지 자기중심적인 존재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영화는 절망과 혼돈 속에서도 희망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타인을 향한 공감과 연대임을 이야기한다. 상화가 아내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석우가 딸을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서로를 위해 행동하는 모습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인간다움의 본질이다. 또한 ‘부산행’은 인간성이란 단지 극단적 상황에서 시험받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유지되어야 할 가치임을 강조한다. 영화 속에서 이기심은 단지 본능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 속에서 강화된 결과이기도 하다. 경쟁, 불신, 무관심으로 가득한 사회는 위기 상황이 왔을 때 쉽게 붕괴된다. 반면 연대와 신뢰가 바탕이 된 사회는 재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부산행’은 이 단순한 진리를 장르 영화라는 틀 속에서 매우 강렬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전달한다.

 

폐쇄된 공간이 만든 사회의 축소판 은유

‘부산행’의 배경이 되는 고속열차는 단순한 탈출 수단이자 공간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축소판으로 기능한다. 약 2시간 동안 달리는 이 폐쇄된 공간은 계급, 갈등, 소외, 연대, 혐오, 공포 등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이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장소이며, 영화는 이를 통해 현대 사회의 구조와 병리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기차는 기본적으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동일한 시스템 속 공간이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자본가, 노동자, 노인, 어린이, 학생, 가족 등 다양한 계층과 정체성을 지닌 이들은 겉으로 보기엔 같은 열차에 타고 있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 이는 실제 사회에서도 동일한 위기 상황에서 계층과 위치에 따라 생존 가능성과 행동 양상이 달라진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객차라는 구조는 자연스럽게 구획을 나누고, 안전한 구역과 위험한 구역이 생기며, 사람들은 더 안전한 쪽으로 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문을 닫고, 타인을 배제한다. 이때 등장하는 문과 칸막이는 물리적인 경계임과 동시에 심리적 경계다. 감염자가 될 수 있는 타인을 받아들일 것인가, 배제할 것인가는 이 사회에서 혐오와 차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감염이 확실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의심만으로 문을 닫고, 다른 이들을 가두는 모습은 집단이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쉽게 비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와 함께, 열차의 구조는 사회의 계급 구조와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앞칸에 위치한 승객들은 뒤칸에서 벌어진 참상을 보지 못하며, 상황을 통제하려고만 한다. 반면 뒤칸에 있는 사람들은 실제 전투와 피해를 감당해야 한다. 이 구조는 권력과 정보, 자원의 불균형이 재난 상황에서 어떻게 불평등하게 작동하는지를 비판적으로 조명하며, 권력의 중심에 있는 이들이 위기 해결보다는 보전과 통제를 우선시하는 모습과도 연결된다. 열차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행동은, 사회가 위기를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떤 이는 협력하고, 어떤 이는 혼란을 틈타 권력을 쥐고, 또 다른 이는 그 틈에서 희생당한다. 영화는 단 한 순간도 이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이 열차를 하나의 ‘사회 실험실’처럼 사용하며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구조를 탐구한다. 열차라는 공간은 결국 도착점에 다다른다. 하지만 그 종착점은 구원이 아니다. 수많은 희생 끝에 살아남은 자들이 도달한 곳은 여전히 불확실한 세계이며, 영화는 이를 통해 재난 이후에도 세상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폐허의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자체가 재난을 겪으며 어떻게 변형되고, 기억되고, 상처를 남기는지를 상징한다. 결국 ‘부산행’은 단지 좀비와 싸우는 영화가 아니라, 폐쇄된 공간 안에서 드러나는 인간 군상의 축소판을 통해 사회 전체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 같은 작품이다. 열차는 움직이고 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고 영화는 묻는다. 당신이 그 열차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 누구를 지키고, 누구를 버렸을 것인가? 그 질문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된다.

 

‘부산행(2016)’은 단순한 좀비 아포칼립스 영화가 아니다. 재난이라는 극한의 조건 속에서 인간의 본능과 선택, 윤리와 감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 작품이다. 생존을 향한 본능적 욕망, 연대와 배제의 갈림길에서의 판단, 폐쇄된 사회 속에서의 갈등 구조 등은 모두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 영화는 장르적 재미를 제공함과 동시에, 그 안에 깊이 있는 성찰과 질문을 담아내며, 한국형 재난 영화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부산행’은 단지 무서운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쉽게 인간성을 잃을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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