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어벤져』는 MCU 1940년대의 첫 주자 스티브 로저스 탄생기를 그렸다. 고전적 영웅 서사에 정치적 은유, 윤리적 질문까지 녹여내 어벤저스의 탄탄한 기반을 다진 작품이었다. 이 글에서는 스티브 로저스의 인물 성장, 레드 스컬과 하이드라의 상징성, MCU 세계관에서의 이 영화의 위치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합니다.
약한 자에서 진정한 영웅으로: 스티브 로저스의 인간적 성장 서사
『퍼스트 어벤져』의 중심은 단연코 스티브 로저스라는 인물의 내면적 가치에 있습니다. 영화는 신체적으로 왜소하고 병약한 청년이었던 스티브가 수차례 군 입대를 시도하지만 번번이 거절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강한 육체를 지닌 사람은 아니지만, 타인을 돕고자 하는 의지와 불의에 맞서는 용기를 갖춘 인물입니다. 스티브의 진정한 힘은 근육이 아니라 ‘정의감’과 ‘책임감’에서 비롯되며, 이는 그가 ‘슈퍼 솔저 프로젝트’에 선발되는 결정적 요인이 됩니다. 에이브러험 어스킨 박사는 “강한 사람에게 힘을 주면 그 힘을 자기 이익에 사용하지만, 약한 자는 힘의 가치를 안다”는 말로 스티브의 인격을 설명하며, 그를 실험 대상으로 택합니다.
슈퍼 솔저 혈청을 맞은 이후 스티브는 외형적으로 완전히 달라집니다. 단숨에 병약했던 체격이 근육질의 이상적 전사로 변화하고, 신체 능력 또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이후의 전개에 있습니다. 힘을 얻은 그가 오만해지거나 폭력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스티브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도덕적 중심을 유지하는 히어로입니다. 그는 자신을 무기처럼 사용하는 정부의 홍보도구에 머무르지 않고, 전우들을 구하고 정의를 위해 자발적으로 전장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힘을 가진 자의 책임’이라는 마블 히어로 세계의 핵심 철학을 대표하는 순간입니다.
또한, 스티브는 ‘캡틴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단순한 애국주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이상과 윤리의 대표자로 승화시킵니다. 그는 미국의 국기를 입고 싸우지만, 미국 정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명령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양심이며,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명령을 어기고서라도 행동합니다. 특히, 하이드라 기지에 혼자 침투하여 수많은 전우들을 구해내는 장면은 그의 결단력과 책임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행동을 넘어, ‘지도자의 자격’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을 제시합니다.
스티브와 페기 카터의 관계도 중요한 감정선입니다. 이 둘은 동료이자 동등한 인간으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당시 시대상에서 보기 힘든 남녀 간의 대등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페기는 단순한 로맨스 대상이 아니라, 스티브가 인간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영향을 주는 존재로 기능하며, 그의 인간성을 지탱해 주는 축입니다. 마지막 비행기에서의 무전 통화 장면은 마블 역사상 가장 감성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히며, 스티브가 임무와 사랑 중에서 전체를 위한 선택을 하는 순간, 그의 영웅적 정체성이 완성됩니다.
또한, 스티브의 희생은 ‘시간을 뛰어넘은 정의’라는 주제를 만들어냅니다. 그는 얼음 속에 잠들게 되며 현대에 깨어나게 되는데, 이는 단순한 타임슬립이 아니라 ‘고전적 가치가 현대 사회에 던지는 질문’의 은유입니다. “우리는 정의를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그의 존재만으로도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스티브 로저스는 단지 힘을 지닌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와 윤리의 수호자입니다.
레드 스컬과 하이드라: 권력, 기술, 이념의 결합체
『퍼스트 어벤져』의 주된 빌런 요한 슈미트, 일명 레드 스컬은 단순한 악당을 넘어선 철학적 상징을 지닌 인물입니다. 그는 나치의 장교이자 과학자이며, 슈퍼 솔저 프로젝트의 초기 실험체로 등장합니다. 혈청의 부작용으로 인해 얼굴이 해골처럼 변형되어 ‘레드 스컬’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데, 이는 외형적으로나 상징적으로 ‘인간성과 괴리된 권력의 추악한 본질’을 시각화한 설정입니다. 슈미트는 하이드라라는 독립 비밀 조직을 설립하고, 나치의 명령조차 초월한 독자적 지배 체제를 구축하려 합니다. 그는 권력을 인류 지배의 수단으로 보며, 아스가르드의 기술인 테서랙트를 통해 신의 힘을 인간이 통제하려는 시도를 감행합니다.
하이드라는 기술과 이념이 결합된 조직으로, 냉정한 과학과 무분별한 야망이 어떻게 인간성을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집단입니다. 하이드라의 무기들은 현실 세계의 과학기술을 뛰어넘는 SF적 상상력으로 구현되며, 이는 마블이 단순한 전쟁 영화의 틀을 넘어 ‘초현대적 공포’와 ‘기술의 윤리’를 이야기하는 데 성공했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하워드 스타크가 등장하여 캡틴의 방패와 관련된 기술을 제공하고, 테서랙트의 분석에 참여하는 장면은 이후 MCU의 과학적 기반과 연결되며 중요한 기점이 됩니다.
레드 스컬은 스티브 로저스와는 완전히 대조되는 인물입니다. 둘 다 슈퍼 솔저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했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스티브는 ‘내면의 가치’를 외적으로 확장한 존재라면, 레드 스컬은 ‘내면의 야망’이 외형을 지배한 괴물입니다. 이 둘의 충돌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힘의 본질이 어디서 비롯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결국 레드 스컬은 테서랙트를 이용하려다 그 힘에 의해 소멸되는데, 이는 ‘신의 힘을 욕망하는 인간의 최후’를 경고하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하이드라는 이후 마블 시리즈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단순한 나치의 잔재를 넘어 현대 사회에 잠재된 전체주의적 권력의 은유로 기능합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에서 쉴드 내부에 스며든 하이드라의 존재는 이 영화에서 시작된 ‘보이지 않는 권력의 공포’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확장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또한, 하이드라는 MCU의 다수 작품에서 빌런의 기원이나 배경으로 등장하며, ‘권력과 과학의 오용’이라는 테마를 지속적으로 부각합니다.
레드 스컬은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에서 다시 등장하게 되며, 이는 『퍼스트 어벤져』에서 다뤘던 상징적 인물들이 단발적인 역할에 그치지 않고, 긴 호흡의 세계관 안에서 다시 복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블은 이처럼 각 영화 속 빌런과 조직들을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유기적 세계관 구축의 핵심요소로 활용하며 긴밀한 내러티브를 완성시켰습니다. 이 모든 것은 『퍼스트 어벤져』에서 레드 스컬과 하이드라를 탄탄하게 설정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MCU 세계관에서 퍼스트 어벤져가 갖는 전략적 위치
『퍼스트 어벤져』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기원'을 담당하는 영화로서, 단순히 스티브 로저스 개인의 기원 이야기를 넘어, MCU 세계관의 여러 핵심 요소들을 심어놓은 전략적인 작품입니다. 첫 번째로 중요한 점은 테서랙트(Tesseract)의 본격적인 도입입니다. 이 에너지원은 아스가르드에서 유래된 신비한 큐브로, 이후 『어벤저스』에서 로키가 사용하고,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가 차지하는 인피니티 스톤 중 하나로 밝혀집니다. 테서랙트는 이 영화에서 무기를 통한 지배를 꿈꾸는 레드 스컬의 도구로 활용되지만, 동시에 이 존재 자체가 ‘우주적 위협’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둘째, 하워드 스타크의 활약은 토니 스타크와의 연결고리를 형성합니다. 하워드는 단지 과학자에 그치지 않고, 기술 발전과 정의 구현의 철학을 갖춘 인물로서, 토니의 성격과 히어로 철학 형성에 큰 영향을 줍니다. 이는 『아이언맨 2』에서 이어지는 유산의 핵심이며, 스타크 가문의 기술력이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세상을 위한 도구’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또한, 하워드의 S.H.I.E.L.D 창립 전 활동은 닉 퓨리의 조직 구성과도 연결되며, MCU의 정보기관 세계관의 기초를 마련합니다.
셋째,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MCU 세계관에서 매우 중요한 설정을 암시합니다. 빙하에서 구조된 스티브가 현대 뉴욕의 병원에서 깨어나며, 닉 퓨리가 등장하는 장면은 『어벤저스』로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이룹니다. 이는 시간의 단절을 극복하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스티브의 존재가, 어벤저스라는 ‘세기의 팀’을 만드는 데 얼마나 전략적으로 중요한지를 암시합니다. 고전적 가치관과 현대적 혼란 사이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인물은 오직 스티브 로저스뿐이라는 메시지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넷째, 페기 카터는 이후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와 『에이전트 카터』 시리즈로 확장되며, 여성 히어로와 정보기관의 중심인물로 자리매김합니다. 또한 『엔드게임』에서 스티브가 마지막에 선택한 인물이기도 하며, 그녀의 존재는 스티브의 인간성과 ‘그가 돌아가고 싶었던 진짜 삶’의 상징이 됩니다. 이처럼 단 한 편의 영화 속 인물과 관계가, 이후 수많은 작품에 걸쳐 긴 서사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퍼스트 어벤져』의 기획력은 돋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MCU의 분위기 자체를 확장시킵니다. 슈퍼히어로 장르가 반드시 현대만을 배경으로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 그리고 고전적 미학과 가치관을 현대 서사 안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삼았음에도, 초과학, 히어로 성장, 철학적 딜레마, 로맨스, 희생이라는 요소를 조화롭게 담아내며, 마블이 단순한 유쾌한 영화가 아닌, 깊이 있는 세계관을 구축하는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퍼스트 어벤져』는 그래서 단지 ‘과거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는 현재와 미래를 잇는 철학적 기반이며, 마블 유니버스를 이끌 핵심 가치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