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마블 (Captain Marvel, 2019)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페이즈 3의 핵심 작품 중 하나로, 최초로 여성 단독 주연 히어로를 중심에 세운 영화다. 개봉 당시 다양한 문화적·사회적 기대와 함께 많은 화제를 모았으며, 특히 캐럴 댄버스가 어떻게 ‘캡틴 마블’이라는 초월적 존재로 성장하는지를 중심으로 구성된 서사는 단순한 히어로물 이상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영화는 기억의 조작, 전쟁의 양면성, 억압된 정체성의 회복, 여성의 주체적 각성이라는 다층적인 주제를 통해 마블의 기존 히어로 서사에서 벗어나, 새롭고 상징적인 방향성을 제시한다. 특히 1990년대를 배경으로 과거의 마블 세계를 탐험하면서도, 현재의 메시지를 관통하는 구조는 ‘캡틴 마블’만의 독특한 서사적 강점이다.
기억의 조작과 자아 정체성의 회복 서사
‘캡틴 마블’은 전통적인 기원(origin) 서사와 달리, 주인공 캐럴 댄버스가 이미 강력한 능력을 지닌 채 영화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상실한 상태이며, 자신이 크리족 전사 ‘버스(Vers)’라고 믿고 살아간다. 이는 기존 히어로물이 ‘능력을 얻는 과정’에 집중한 것과 달리, ‘기억을 되찾고 진정한 자아를 회복하는 여정’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처럼 기억의 조작은 단순한 SF적 장치가 아니라, 정체성과 억압, 지배 구조에 대한 비판적 상징으로 작용한다. 영화 초반 캐럴은 크리 제국의 일원으로서 스크럴과 전쟁 중이다. 그녀는 전사로 훈련받으며 감정을 억제하고 명령에 따르는 것이 옳다고 배워왔다. 이 설정은 억압적 사회 시스템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세뇌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욘-로그를 포함한 상급자들은 캐럴에게 끊임없이 ‘감정은 약점’이라고 말하며 그녀의 힘을 통제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힘은 사실 그녀 고유의 것이며, 억압받고 봉인된 자아의 일부였음이 후반부에 밝혀진다. 결국 영화는 캐럴이 자신의 기억을 되찾고, 감정을 억제하기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진정한 힘을 각성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기억을 찾는 과정은 스크럴의 수장 탈로스와의 대면에서 본격화된다. 그는 적이 아니라 피해자였으며, 캐럴의 기억 속 파편들은 자신이 본래 지구 출신이며, 공군 파일럿으로서 위대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로 연결된다. 이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타자에 의해 정의되어 왔던 한 개인이, 스스로 그 정체성을 회복하는 각성의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는 억압된 자아의 해방이라는 보편적 서사와도 연결되며, 특히 여성의 주체성과 해방을 상징하는 메타포로 기능한다. 캐럴이 자신의 힘을 완전히 회복하게 되는 전환점은, 바로 ‘감정을 해방’하는 순간이다. 이 장면은 기존의 히어로 영화가 남성 중심적 냉정함과 계산된 전략을 미덕으로 삼았던 전통을 깨고, 감정의 표현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발견이라는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한다. 욘-로그가 마지막 대결에서 "감정을 빼고 나와 싸워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캐럴은 그 제안을 단호히 거부하며 더 이상 타인의 기준에 맞추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다. 이는 단지 악당을 물리치는 장면을 넘어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기억의 회복과 자아 각성 서사는 단순한 ‘히어로의 탄생’이 아니라, ‘내면의 진실을 마주하고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길’을 찾는 과정이며, 이는 오늘날 사회에서 정체성과 자유를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캡틴 마블은 이처럼 ‘기억의 회복’을 통해 진짜 힘을 되찾은 최초의 마블 히어로로, 물리적인 강함보다 심리적 성장의 서사를 중심에 둔 캐릭터다.
크리와 스크럴, 전쟁의 양면성을 재조명하다
‘캡틴 마블’은 선과 악, 아군과 적이라는 전통적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영화 초반 캐럴은 크리 제국의 충직한 전사로서, 스크럴을 무자비한 침략자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중반 이후 그녀가 스스로의 과거와 마주하면서 이 구도가 뒤바뀌기 시작한다. 크리는 강력한 제국이며 스크럴은 그들에게 쫓기는 난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관객은 기존에 믿고 있던 선악 구도가 얼마나 왜곡된 정보에 기반했는지를 알게 된다. 이는 현실 세계의 전쟁과 권력 구조, 그리고 선전과 진실의 차이에 대한 은유로 해석할 수 있다. 크리 제국은 강력한 군사력과 선전 전략을 바탕으로 스크럴 종족을 괴멸의 대상으로 묘사한다. 캐럴도 그 체제의 일원이 되어 타인을 적으로 인식하도록 교육받았으며, 이러한 세뇌는 영화 초반에 철저하게 관철된다. 그러나 스크럴의 리더 탈로스를 만나면서 그들이 단지 생존을 위해 도망치는 존재임이 밝혀지고, 탈로스는 캐럴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가족과의 평화로운 삶뿐"이라고 말한다. 이 순간부터 관객의 시선은 완전히 전환되며, 스크럴은 더 이상 악당이 아니다. 이러한 반전은 ‘적의 인식’이 얼마나 상대적이며, 힘 있는 자들이 만든 정보에 의해 왜곡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화가 이러한 메시지를 채택한 것은 단순한 설정의 전환이 아니라, 현대 국제 정치 및 미디어 환경에서 우리가 진실이라 믿는 것들이 어떻게 조작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도다. 특히 미국이 중심이 되어 그려진 기존 마블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는 ‘중심’이 아닌 ‘주변’의 시선을 통해 세계를 다시 해석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크리 제국의 대표 전사 욘-로그는 상징적인 권력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캐럴에게 끊임없이 그녀의 능력을 억제하도록 유도하고, 감정을 버려야만 진정한 전사가 될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 후반, 캐럴은 이 같은 조작과 억압이 자신을 약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을 숨기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이는 권력이 어떻게 개인의 정체성을 억압하고, 진실을 왜곡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스크럴과의 연합은 단지 갈등의 해소가 아니라, 그 자체로 ‘진실에 대한 이해’의 결과물이다. 이는 영화 전반을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 즉 외형적 다름이나 과거의 오해가 진실을 가리는 것이며, 이를 극복하는 길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데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캡틴 마블’은 단지 개인의 성장 서사에 그치지 않고, 전쟁과 권력, 진실과 왜곡, 중심과 주변의 문제를 포괄하는 복합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한다.
여성 히어로의 독립성과 상징성의 진화
‘캡틴 마블’은 마블 역사상 최초로 여성 단독 히어로를 타이틀에 내세운 작품이다. 이는 단순한 상징적 사건이 아니라, 마블 영화가 오랫동안 남성 중심적 서사를 전개해 온 것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전환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캐럴 댄버스는 남성 캐릭터의 보조자나 사랑의 대상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립적 서사와 목적, 세계관을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이는 히어로물에서 여성의 위치를 재정의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캐럴이 과거 공군 파일럿 시절에도 수많은 제약과 편견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플래시백을 통해 보여준다. 그녀는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 속에서 수차례 좌절하고 무시당했지만, 매번 일어서며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 왔다. 이러한 묘사는 단지 ‘강한 여성’이라는 외형적 특징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구조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실질적인 억압을 현실적으로 조명한다. 특히 영화 중반, 캐럴이 반복적으로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장면은 여성의 연대와 끈질긴 생존 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장면으로 해석된다. 이 영화는 또한 여성 간의 연대도 중요하게 다룬다. 캐럴과 마리아 램보의 관계는 단순한 동료 이상이며, 서로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로 그려진다. 마리아는 캐럴이 자신을 잊고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따뜻하게 받아들이며, ‘당신은 원래부터 강한 사람이었다’는 말을 통해 그녀가 스스로의 가치를 자각하도록 돕는다. 이는 여성 주인공이 단독으로 활약하는 동시에, 또 다른 여성과의 관계 속에서 감정과 정체성을 회복하는 모습으로, 기존 남성-여성 관계 중심의 서사와는 뚜렷이 구별된다. 결정적으로, 캐럴은 자신의 힘을 누군가에게 증명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욘-로그가 “내 방식으로 싸워라”라고 강요하자, 그녀는 그 말을 무시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끝낸다. 이는 권위나 외부 기준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궁극적인 자아 해방의 순간이다. 이 장면은 수많은 히어로 영화 중에서도 드물게, ‘힘의 사용’이 아닌 ‘자기 결정권’의 행사를 중심으로 한 결말이라는 점에서 강한 상징성을 지닌다. ‘캡틴 마블’은 이처럼 단순히 ‘여성 히어로’의 등장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서사의 방식과 구조, 감정의 표현 방식까지 모두 새롭게 구축함으로써, 기존 히어로 장르의 문법 자체를 전환하는 데 기여한다. 이는 향후 MCU의 다른 여성 히어로 캐릭터들이 보다 주체적으로 그려지는 데 영향을 주었으며, 히어로물이 더 이상 특정 성별이나 정체성에 국한되지 않고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되었다. 캡틴 마블은 단순한 히어로 탄생의 이야기를 넘어서, 기억의 회복과 정체성의 각성, 권력의 이면과 진실, 그리고 여성의 독립성과 연대라는 복합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중심축으로 떠오른 이 영화는, 단지 서사의 한 조각이 아니라 전체 세계관을 이끌어나가는 새로운 상징으로서, 향후 MCU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예고하는 이정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