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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2018)의 실험체 자각과 초능력 각성

by 취다삶 2026. 2. 9.

‘마녀(2018)’는 초능력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 SF 액션 장르에 속하면서도, 전형적인 히어로나 슈퍼파워 영화의 공식을 따르지 않고, 인간 실험과 기억 조작, 자아 각성의 주제를 정교하게 결합시킨다. 박훈정 감독이 연출하고 김다미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한 소녀가 자신의 과거를 자각하고 그 능력을 회복해 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경계, 그리고 능력과 도덕의 균형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초능력 소재를 액션 스펙터클로만 소비하지 않고, 기억 상실과 실험실 유년기, 가족의 의미와 같은 인간적인 감정 요소를 함께 엮으며 장르적 깊이를 확장시킨다. 특히 중후반부에 드러나는 반전 구조는 단지 이야기의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 구자윤이 어떤 존재이며, 그녀의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마녀’는 그 제목이 암시하듯, 사회에서 낙인찍히고 배제되었던 존재의 각성과 반격을 그리며, ‘힘’의 의미를 다시 쓰는 이야기다.

 

 

마녀(2018) 포스터 사진
마녀(2018)

 

 

 

초능력 실험체의 인간성 회복과 자각

‘마녀’의 중심 서사는 실험체로 태어난 한 소녀, 구자윤이 기억을 잃고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하다가, 과거의 기억과 능력을 점차 회복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영화는 주인공이 단지 초능력을 가진 캐릭터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아닌 방식으로 길러진 존재였다는 점에서 서사의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그녀는 인간 실험의 결과물로 태어나 전투와 파괴 능력을 훈련받은 피실험체였지만, 기억을 잃고 농촌의 평범한 집안에서 입양되어 성장하며 인간적인 애정과 가족의 의미를 경험하게 된다. 이 설정은 단지 기억 상실이라는 장치를 넘어서, 인간성과 비인간성 사이의 복잡한 정체성 문제를 제기한다. 구자윤은 성장 과정에서 평범한 고등학생처럼 살아가며, 병든 양부모를 돌보고, 친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러한 모습은 그녀가 비록 실험체로 태어났을지라도,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전혀 결격 사유가 없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의 신체는 점차 이상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고, TV 프로그램 출연을 계기로 그녀의 존재는 과거 실험기관의 요원들에게 포착된다. 이 시점부터 영화는 그녀의 일상이 서서히 무너지고, 숨겨져 있던 능력과 기억이 돌아오며, 그녀가 과거 어떤 존재였는지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주목할 점은 자윤이 자신의 과거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서사에서 기억을 되찾는 주인공은 혼란과 고통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회피하지만, 자윤은 오히려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고, 그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녀는 피해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존재로 변모하며, 과거 실험기관의 요원들을 상대로 철저한 계산과 반격을 감행한다. 이는 자아의 자각과 능력의 통제를 의미하며, 단순히 본능적으로 폭발하는 능력이 아니라, 자윤 스스로가 통제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초능력으로 승화된다. 이 과정에서 자윤이 보여주는 인간성은 매우 중요하다. 그녀는 복수를 위해 싸우지만, 자신이 소중히 여긴 가족, 특히 병든 어머니와 아버지를 해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신중하게 움직인다. 또한 자신을 실험체로 만든 이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무분별한 살상을 자행하지 않으며, 필요 최소한의 행동만을 취한다. 이 점은 자윤이 여전히 인간적인 도덕성과 감정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실험체’라는 비인간적인 존재와 ‘딸’이라는 가족적 정체성 사이에서 그녀가 어떻게 균형을 잡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이 장은 구자윤이라는 인물이 초능력이라는 비범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평범한 인간의 감정과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그녀는 단지 ‘무기’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며, 그 선택은 그녀를 단순한 괴물이나 악당이 아닌,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로 만든다. ‘마녀’는 이러한 인간성과 비인간성 사이의 경계를 끊임없이 흔들며, 관객으로 하여금 자윤의 존재를 단순히 옳거나 그르다고 판단할 수 없게 만든다.

 

폭력과 통제 속 정체성 각성과 반란의 서사

‘마녀’의 서사 구조는 명확한 전환점을 중심으로 전반부와 후반부가 완전히 다른 색채를 띤다. 전반부가 기억을 잃은 채 살아가는 자윤의 일상과 그 이면의 불안감을 보여주는 과정이라면, 후반부는 기억을 회복한 자윤이 스스로를 실험체로 인식하고, 자신을 통제하려는 세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전면적인 반란의 서사로 전개된다. 이 반전 구조는 단순한 스토리 전개 방식의 차원을 넘어, 주인공의 내면이 변화하는 결정적 순간을 강조하며, 자윤이라는 캐릭터의 정체성과 선택을 드러내는 핵심 장치로 작용한다. 자윤은 후반부에서 능력의 정체를 완전히 드러낸다. 그녀는 자신이 실험기관의 최고 성공작이며, 능력을 자의적으로 억제하고 있었음을 밝혔다. 이는 단지 기억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자아와 능력 모두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설정은 그녀가 단지 피해자나 실험체가 아니라, 계획적인 반격자로서 행동했음을 드러내며, ‘마녀’라는 제목이 상징하는 반역자, 이단자의 이미지를 구체화시킨다. 자윤은 자신을 통제하려는 세력에 반기를 들며, 폭력과 통제를 기반으로 한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상징적 인물로 변모한다. 영화는 폭력의 구조를 단지 물리적 충돌로 묘사하지 않는다. 실험기관은 인간을 도구로 만들고, 기억을 지우며,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약물을 투여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윤을 포함한 아이들을 통제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은 철저히 배제되며, 오직 효율성과 성능만이 기준이 된다. 이는 국가나 조직이 개인을 어떻게 무력화하고 통제하는지를 상징하는 메타포로 해석될 수 있으며, 자윤의 반란은 그러한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거부를 의미한다. 자윤의 행동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을 도구로 만들고, 그 도구를 회수하려는 자들을 향해 폭력적으로 맞서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 선택권을 되찾고자 하는 의지가 존재한다. 그녀는 킬러가 되기를 거부했고, 가족과 함께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 선택마저 박탈당하자,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직접 싸우는 길을 택한다. 이 선택은 능력자임에도 불구하고 도망자 신세로 살아가야 했던 수많은 존재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보이며, 자윤의 반란은 일종의 해방 서사로 작용한다. 이 지점에서 ‘마녀’는 단지 액션 영화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자윤의 반격은 매우 계산적이고 치밀하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녀는 가장 적절한 순간에 능력을 드러내며, 상대방의 약점을 파악하고, 치명적인 한 방으로 제압하는 방식으로 싸운다. 이는 그녀가 단순히 힘이 센 존재가 아니라, 전략적으로 상황을 통제하는 인물임을 의미하며, 기존 초능력자 서사에서 흔히 등장하는 ‘능력 폭주’와는 명확히 구분된다. 이 반란의 끝에서 자윤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더 이상 과거의 실험체도, 평범한 소녀도 아닌, 능력과 정체성을 통합한 독립적인 존재로 탄생한다. 그녀의 싸움은 단지 조직과의 충돌이 아니라, 자신 안의 과거와 미래, 인간성과 무기성 사이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었고, 그 선택은 스스로의 삶을 되찾는 첫걸음이 된다.

 

능력자 세계관에서 인간성과 선택의 윤리

‘마녀’가 다루는 세계관은 단지 초능력을 지닌 존재들이 싸우는 액션의 장이 아니라, 그 능력이 사회와 어떻게 충돌하며, 어떤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지에 대한 실험 무대이기도 하다. 자윤이 속한 실험체 집단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키워지지만, 그 과정은 비윤리적인 조작과 폭력, 약물에 의한 억제, 그리고 기억 소거와 같은 비인간적 통제로 이루어진다. 이는 능력의 획득이 단지 초월적 힘을 의미하지 않음을 시사하며, 그 힘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가에 따라 ‘인간성’의 존속 여부가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윤은 능력을 지닌 자로서, 강력한 파괴력을 갖고 있지만, 그 힘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한다. 이 점에서 그녀는 영화 속 다른 실험체들과 분명히 구분된다. 예컨대, 그녀를 제거하려는 다른 요원들은 살상과 파괴에 거침이 없으며, 마치 자신이 인간이 아닌 전투용 무기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명령을 따르고, 감정 없이 타인을 해치는 데 거리낌이 없지만, 자윤은 자신의 감정을 유지하며, 불필요한 폭력을 최대한 피하려 한다. 이 차이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 곧 윤리적 우위를 의미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설정은 ‘힘의 윤리’라는 주제를 부각시킨다. 우리는 흔히 강한 능력을 지닌 존재가 정의롭기를 바라고, 그 힘이 약자를 지키는 데 사용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 힘이 반드시 선한 의지에 의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제어되지 않으면 독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자윤은 자신의 힘을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이지만,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녀가 인간적인 정서와 윤리 의식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한 판단이며, 이 판단의 기준은 ‘인간성’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영화는 능력자라는 설정을 통해 현대 사회의 ‘엘리트주의’ 혹은 ‘우생주의’에 대한 은유적 비판을 제기한다. 실험기관은 ‘완벽한 인간’을 만들기 위해 인간을 도구화하며, 약한 자를 도태시키고, 강한 자를 조작하려 한다. 이는 능력을 중심으로 한 차별과 계급 구조를 연상케 하며, 자윤의 반란은 이러한 구조에 대한 저항으로 읽힌다.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진 방식에 반기를 들고, 그 구조로부터 벗어나 인간으로서 살아가기를 택한다. 이는 인간의 가치는 능력이나 성능이 아니라, 선택과 감정,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메시지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윤은 모든 것을 정리한 뒤, 병든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다시 능력을 사용하고자 한다. 이는 그녀가 단순히 전투기계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서 힘을 사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능력과 인간성의 조화를 상징한다. ‘마녀’는 초능력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액션의 한계를 넘어서, 그 힘을 갖는 자의 책임과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이 만들어내는 윤리적 무게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결국, ‘마녀’는 ‘힘 있는 자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영화다. 자윤은 초월적 능력을 가졌지만, 그 능력을 통해 지배하거나 복수를 넘어서, 스스로의 삶을 회복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며, 새로운 존재로서 자리를 잡는다. 이는 단지 초능력자의 성장담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각자의 능력과 환경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보편적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다.

 

‘마녀(2018)’는 초능력과 실험체라는 설정 속에 인간성, 기억, 선택의 윤리를 치밀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주인공 자윤은 단순한 초능력자가 아닌, 인간성과 힘의 균형 속에서 선택을 내리는 복합적 존재로 그려지며, 영화는 폭력과 통제에 저항하는 자아 각성의 서사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단순한 장르영화를 넘어서, ‘마녀’는 힘의 윤리와 인간됨의 본질에 대해 깊은 질문을 남기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하며, 이후 시리즈 전개에 대한 기대까지 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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