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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게스트(2018)의 퇴마 서사와 한국 사회의 악령 은유

by 취다삶 2026. 2. 12.

‘더 게스트(2018)’는 OCN에서 방영된 한국 최초의 본격 오컬트 엑소시즘 드라마로, 퇴마를 주제로 한 장르적 도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작품이다. 김홍선 감독과 서재원, 권소라 작가가 손잡고 만든 이 드라마는 무속과 가톨릭을 중심축으로 하여, 한국 사회에 내재한 악과 죄의식을 ‘악령 박일도’라는 존재를 통해 드러낸다. 드라마는 영매 윤화평, 사제 최윤, 형사 강길영이라는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각자의 트라우마와 상처를 지닌 이들이 어떻게 ‘악’과 마주하고, 그것을 물리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지를 그린다. 단순한 공포를 넘어서, 이 드라마는 인간 내면의 어둠, 한국 사회의 죄책감, 공동체의 붕괴와 같은 주제를 교차시키며, 장르적 쾌감과 서사적 깊이를 모두 갖춘 한국 오컬트의 결정판으로 자리매김했다. ‘더 게스트’는 ‘악’이 외부에서 온 존재가 아닌, 우리 안에 잠재된 파괴적 충동과 욕망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장르 드라마 이상의 상징성과 메시지를 전달한다.

 

 

더 게스트(2018) 포스터 사진
더 게스트(2018)

 

 

한국형 오컬트의 진화: 무속과 가톨릭의 장르적 융합

‘더 게스트’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한국 오컬트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두 종교 체계—무속과 가톨릭—을 동시에 서사 구조 안에 통합했다는 점이다. 윤화평은 무당 집안에서 태어난 영매로, 귀신을 보고 죽은 자의 기운을 느끼는 능력을 지녔으며, 최윤은 정통 가톨릭 교육을 받은 사제이자 퇴마사로서, 악령을 성수와 라틴어 기도로 몰아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에 현실주의자인 강길영 형사가 수사와 이성의 축을 맡으면서, 이 세 사람은 각자의 관점과 방식을 가지고 하나의 악과 맞선다. 이러한 다종교 시스템은 드라마에서 단지 설정상의 흥미 요소를 넘어서, 한국 사회의 종교 문화와 정신적 토대를 반영한다. 실제 한국 사회는 무속과 불교, 기독교가 혼재한 복합 종교 사회이며, 사람들은 종교적 신념과 상관없이 일상적으로 점을 보거나 부적을 쓰는 등 혼합적인 신앙 실천을 보인다. ‘더 게스트’는 이 점을 장르적 도구로 활용하여, ‘악’이라는 절대적 존재를 다층적이고 다면적으로 해석하게 만든다. 윤화평의 무속적 접근은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반응을 중심으로 한다. 그는 악령의 기운을 감지하고, 그 존재에 이끌려 사건 현장에 도달하는 ‘촉’과 같은 능력을 지닌다. 반면, 최윤은 교회법과 훈련된 신학을 기반으로 악령의 실체를 과학적이면서도 신앙적으로 분석하려 한다. 이 상반된 접근은 처음엔 충돌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은 각자의 방법론이 모두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고, 이는 곧 융합의 필요성과 조화를 상징하는 메타포로 기능한다. 무속은 한국 전통의 민간신앙으로서, 공동체 중심의 문제 해결과 직결되는 반면, 가톨릭은 보편성과 절대적 악에 대한 이론적 접근을 중시한다. 이 둘의 융합은 결국 ‘더 게스트’라는 드라마가 단지 오컬트의 외형을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적 맥락 속에서 장르적 정체성을 구축하려는 시도임을 보여준다. 특히 제사의식, 장례문화, 가족 단위의 신앙 구조 등 한국 고유의 문화 요소를 디테일하게 반영한 연출은, 이 드라마가 왜 단순한 장르물을 넘어선 작품으로 평가받는지를 설명해 준다. 더 나아가 이 종교 간의 충돌과 조화는, 주인공들의 내면과 성장 서사에도 반영된다. 윤화평은 자신의 능력을 저주로 여겼지만, 그것을 통해 타인을 구하고 의미를 찾는다. 최윤은 퇴마사로서 냉정하고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지만, 윤화평과의 협업을 통해 보다 감정적이고 인간적인 신념을 회복한다. 이러한 인물 간의 상호작용은 단순한 퇴마 이상의 이야기, 즉 인간성과 신앙, 믿음과 의심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서사를 완성한다. ‘더 게스트’는 한국형 오컬트가 단지 외국의 장르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문화를 반영하고, 재해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명확하게 제시한 작품이다.

 

악령 ‘박일도’의 상징성과 사회적 공포의 구조

‘더 게스트’의 핵심적인 긴장감은 단연 ‘박일도’라는 악령의 존재에서 비롯된다. 그는 단순한 귀신이나 혼령이 아닌, 복수심과 증오, 분노 같은 인간의 내면에 뿌리내린 어둠을 부추기고 증폭시키는 존재다. 박일도는 드라마 내내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 그는 특정한 형태로 나타나기보다는, 사람의 몸을 빌려 존재하거나, 환영이나 꿈의 형태로 사람을 조종한다. 이처럼 실체가 없는 악은, 오히려 더 강한 공포를 자아낸다. 악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침투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박일도는 사람의 마음속 약한 틈을 파고든다. 죄책감, 분노, 상실, 트라우마 같은 감정의 균열이 박일도의 숙주가 된다. 이는 단지 초자연적인 설정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극단적 범죄, 이해할 수 없는 폭력, 이유 없는 살인 사건들 속에서 ‘악’은 언제나 인간의 내면과 연결되어 있으며, 박일도는 그 구조를 드러내는 장치다. 더욱 중요한 점은, 박일도가 단순히 나쁜 혼령이 아니라 ‘계보 있는 악’이라는 점이다. 그는 과거 조선시대부터 존재했으며, 수백 년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왔다. 이는 곧 한국 사회 내에서 반복되어 온 구조적 악, 즉 권력과 폭력, 억압과 침묵의 역사적 연속성을 상징한다. ‘더 게스트’는 박일도를 통해 사회가 만들어낸 어두운 감정, 역사적으로 누적된 억압과 상처를 드러낸다. 그래서 박일도는 유령이 아니라, 한국 사회 그 자체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형상이다. 박일도가 특히 어린아이, 여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장면은, 드라마가 단순한 오컬트를 넘어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악은 언제나 가장 약한 곳, 가장 상처 입기 쉬운 존재를 노리고, 사회는 그것을 방관하거나 외면한다. 이는 실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여러 사건—가정폭력, 아동학대, 성범죄 등—을 상기시키며, 악령이라는 설정을 통해 그 현실을 고발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박일도는 공포의 대상이자, 사회 구조의 은유이자, 주인공 내면의 그림자다. 그는 죽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넘어서야 하는 존재이며, 그래서 퇴마는 단순한 퇴치가 아닌,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과정’이 된다. 이는 ‘더 게스트’가 단순한 공포 스릴러가 아니라, 철학적이고 심리적인 깊이를 지닌 장르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박일도라는 악은 타인을 죽이게 만드는 괴물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 온 내면의 진실일지도 모른다.

 

퇴마 3인의 연대와 구원의 서사적 기획

‘더 게스트’의 마지막 힘은 바로 윤화평, 최윤, 강길영 세 인물의 관계와 성장, 그리고 그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연대의 서사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배경과 상처, 신념을 가진 인물들이다. 윤화평은 어릴 때부터 귀신을 보는 능력을 지닌 채 괴물처럼 취급받았고, 최윤은 형을 죽인 악령과 싸우며 냉철함을 무기로 삼는다. 강길영은 퇴마와는 무관한 형사이지만, 자신의 어머니가 악령에 의해 죽은 이후 이 사건에 깊이 휘말리게 된다. 이 세 인물은 처음에는 서로를 믿지 못한다. 윤화평은 무속인이라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있으며, 최윤은 교리 외의 방식을 거부하며 배타적이다. 강길영은 퇴마 자체를 믿지 않는 이성주의자이다. 그러나 박일도를 마주하면서, 그들은 서로의 방식과 상처를 이해하고 연대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팀플레이가 아니라, 각자가 지닌 결핍이 다른 이의 신념과 만나면서 채워지는 과정이다. 이 드라마의 서사 구조에서 가장 돋보이는 지점은, 이들의 관계가 ‘선택적 가족’의 구조를 띤다는 점이다. 이들은 혈연이나 제도에 의해 묶인 관계가 아니라, 함께한 시간과 공유된 고통, 함께 겪은 싸움을 통해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해체되어 가는 전통적 가족 개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즉, 악령을 퇴치하는 것은 이성이나 신앙, 혹은 능력 하나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를 믿고 지지하는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메시지다. 또한 이들의 연대는 단순히 ‘악을 물리치는 협력’에 그치지 않고, 각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구원의 여정이기도 하다. 윤화평은 자신의 능력을 저주에서 은총으로 바꾸고, 최윤은 형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넘어 신념을 회복하며, 강길영은 어머니의 죽음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삶을 이어갈 용기를 얻는다. 이들은 악령과의 싸움을 통해 각자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길에 도달한다. ‘더 게스트’의 마지막 장면은 여전히 박일도의 기운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함을 암시한다. 이는 악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며, 우리 안에 언제든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연대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싸울 수 있다면, 그 악은 더 이상 지배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는 희망도 함께 전달된다. 이는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니라, ‘지속적인 싸움’과 ‘끊임없는 선택’의 과정을 이야기하는 결말이며, 장르물로서 드라마가 가지는 서사적 책임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더 게스트’는 공포와 퇴마를 다루지만,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상처입은 인간, 흔들리는 인간, 믿음과 의심 사이에 놓인 인간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진정한 구원의 조건이기도 하다.

 

‘더 게스트(2018)’는 오컬트라는 장르를 한국적 맥락에서 성공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공포의 외피 아래 인간성과 공동체, 사회적 트라우마, 믿음의 구조를 깊이 있게 탐색한다. 이 작품은 장르적 실험성과 완성도를 동시에 갖추며, 한국 드라마의 장르 다변화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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