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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센스 영화 리뷰 (박찬욱, 심리스릴러, 손해사정사)

by 취다삶 2026. 3. 6.

저도 처음엔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라길래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극장에 갔습니다. 솔직히 이 감독의 영화는 항상 호불호가 갈리거든요. 그런데 이번 '넌센스'는 제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심리 스릴러는 반전과 긴장감으로 승부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그보다 인간 내면의 취약성을 파고드는 방식이 훨씬 인상 깊었습니다.

 

넌센스(2025)

 

손해사정사라는 직업과 감정 없는 여자의 설정

손해사정사 김윤나는 표정 변화 없이 사고 현장을 조사합니다. 공장에서 손가락이 절단된 사고 현장에 그녀가 직접 가져온 부러진 손가락 모형을 프레스 기계에 넣어보는 장면은 제가 본 영화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냉정했습니다.

여기서 손해사정사란 보험사고 발생 시 현장을 조사하고 보험금 지급 여부를 판단하는 전문직을 의미합니다. 국내에서는 금융위원회 산하 손해사정사 시험을 통과해야 자격을 얻을 수 있으며, 의료·화재·차량 등 분야별로 전문성이 요구됩니다(출처: 금융감독원).

직장 동료들은 그녀를 '해결사'라고 부르지만, 그 말속에는 '소시오패스'라는 불편한 단어가 늘 따라붙습니다. 저는 이 설정이 처음엔 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다 보니 오히려 현실적이더군요. 실제로 감정 노동이 심한 직업일수록 감정을 차단하는 방어기제가 작동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까요.

윤나가 신입 직원 보경의 업무를 떠맡게 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보경이 갑자기 사직서를 내고 사라진 상황, 그리고 그녀가 맡았던 사건은 저수지에서 발견된 암 환자의 익사 사건입니다. 보험금 수령액이 10억에 달하는 이 사건의 보호자는 가족이 아닌 지인 강순규였습니다.

웃음치료사 강순규의 이중성과 관찰력

이벤트 용품점을 운영하는 강순규는 첫 만남부터 독특합니다. 나팔을 불고 가면을 쓴 채 등장한 그는 "진주 강 씨 시중공파 27대손"이라며 자신을 소개합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이 캐릭터가 단순히 코믹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순규는 윤나의 신발을 보고 "앞은 깨끗한데 뒷부분에 적당히 주름이 잡혀 있다"며 그녀가 현장 조사를 위해 신발을 바꿔 신는다는 사실을 간파합니다. 여기서 관찰력(observational skills)이란 상대방의 미세한 행동이나 물건을 통해 심리 상태나 습관을 파악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행동 단서 해석'이라고 부르며, 상담사나 프로파일러에게 필수적인 역량으로 간주됩니다.

일반적으로 웃음치료사는 환자에게 긍정적 정서를 전달하는 역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순규는 그보다 훨씬 깊은 곳을 파고듭니다. 그는 윤나에게 "꿋꿋하게 사는 사람과 꼿꼿하게 사는 사람은 다르다"며 그녀 마음속 구멍을 직접 지적합니다.

순규가 윤나에게 건네는 말들은 다음과 같은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 겉으로 괜찮은 척하는 사람일수록 내면의 상처가 크다
  • 표정 없이 사는 사람은 감정을 차단한 것이지 없는 게 아니다
  • 진짜 치유는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저는 이 대사들이 단순한 심리 상담 기법이 아니라, 상대방의 방어막을 허무는 일종의 심리 조작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순규의 이중성은 점점 더 명확해집니다.

10억 보험금과 반복되는 의문사의 패턴

윤나는 순규가 서명한 서류를 받아 들고도 무언가 석연치 않은 기분을 떨칩니다. 그리고 사건 현장의 CCTV를 다시 확인하던 중, 사고 당시 순규의 차량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더 충격적인 건 그 다음입니다. 순규에게 칼을 들고 다가가던 여성 최수진이 며칠 후 야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것입니다. 형사는 윤나에게 "강순규 씨가 최수진 씨의 남편"이라고 알려주며, 최수진 명의의 사망보험 수익자가 몇 달 전 순규로 변경되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여기서 사망보험금 수익자 변경이란 피보험자가 사망 시 보험금을 받을 사람을 계약 도중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원래 가족이 받을 돈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행위인데, 금융거래 중에서도 특히 의심받기 쉬운 행위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영화의 진짜 의도가 드러났다고 봅니다. 윤나가 보험사에 순규의 과거 보험금 청구 이력을 요청했을 때, 팩스로 쏟아져 나온 수십 장의 기록들. 일반적으로 보험 사기범은 한두 건으로 끝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그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반복적인 패턴을 보여줍니다.

2025년 44회 벤쿠버 국제영화제 '스포트라이트 온 코리아' 섹션에 공식 초청된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인간의 취약한 순간을 파고드는 심리 조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출처: 벤쿠버국제영화제). 순규는 윤나에게 "보경 씨가 왜 사라졌는지 아냐"고 물으며, 그녀 역시 마음속 구멍을 안고 사는 사람임을 간파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저는 한두 번 본 사람에게 제 내면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친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속마음을 숨기는 게 우리 문화 아닐까? 박찬욱 감독은 이 질문을 영화 내내 던집니다. 코미디언 출신 순규가 사람들을 웃기며 치유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약점을 파고들어 이용하는 인물이었다는 반전은 제게 꽤 큰 충격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영화를 본 뒤 이야기를 나눠보면, 코믹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너무 무겁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좋은 이유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여운. 그게 진짜 좋은 영화 아닐까요? 2025년 11월 26일 개봉 예정인 '넌센스'는 단순히 재미를 위한 영화가 아니라, 우리 안의 취약함과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작품입니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치밀한 연출과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가 더해져, 올해 놓치기 아까운 심리 스릴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nUmsYX_9j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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