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남산의 부장들(2020) 권력의 본질을 묻다

by 취다삶 2025. 12. 18.

2020년에 개봉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의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결정적인 사건인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권력의 본질과 그것을 둘러싼 인간 군상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특히 이병헌, 이성민, 곽도원 등 실력파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와 우민호 감독의 절제된 연출은 사건의 무게감과 심리적 긴장을 극대화한다. '남산의 부장들'은 권력을 둘러싼 냉혹한 현실을 정치 스릴러의 문법으로 풀어내며,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오늘날의 사회에도 깊은 울림을 전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영화는 청와대와 중앙정보부, 그리고 정치권이라는 권력의 핵심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인물들이 점차 분열하고 충돌하는 과정을 통해 ‘권력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남산의 부장들(2020) 포스터 사진
남산의 부장들(2020)

 

 

권력의 본질을 묻다: 충성, 배신, 그리고 인간의 선택

‘남산의 부장들’은 실존 인물 김재규와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차지철 등의 관계를 중심으로 권력 내부의 긴장과 갈등을 서사적으로 그려낸다. 영화는 시간 순서대로 전개되기보다는, 40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암살 사건까지의 과정을 퍼즐처럼 조립해가는 구성이다. 이 방식은 관객에게 단순한 사건의 재현을 넘어, 인물들의 선택과 그 이면에 담긴 심리를 추적하게 만든다. 특히 김재규 역을 맡은 이병헌의 연기는 절제된 분노와 내면의 갈등을 오롯이 전달하며,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극적으로 설득한다.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으로서 박정희의 최측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박정희의 신임을 받았으며, 체제 유지의 핵심 인물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그가 권력의 중추에서 점차 밀려나고, 극단적인 충성 경쟁 속에서 고립되어가는 과정을 사실감 있게 묘사한다. 특히 차지철과의 갈등은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니라, 시대적 가치관과 인간적인 신념의 충돌로 비춰진다. 차지철은 무조건적인 충성과 폭력적인 방식으로 체제를 유지하려 하지만, 김재규는 그런 방식에 점점 회의를 느낀다. 이 충돌은 단순한 인물 간의 갈등이 아니라, 독재 권력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낸다. 영화는 권력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매우 구체적인 인간의 심리와 행동으로 표현한다.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의 말과 행동, 눈빛과 침묵 속에는 단순한 정치적 계산이 아닌 인간의 두려움과 분노, 충성심과 배신의 감정이 얽혀 있다. 특히 회의실에서의 긴장감, 술자리에서의 수직적 위계, 보고 장면에서의 눈치 싸움 등은 권력이 어떻게 인간의 언어와 몸짓까지 규율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권력이 단지 제도적 권한이 아니라, 인간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또 하나의 감정 시스템임을 체감하게 만든다. 이 영화의 백미는 후반부 박정희 대통령과 김재규가 독대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대사나 연출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두 인물 사이에 축적된 신뢰와 불신, 사랑과 증오가 폭발하는 지점이다. 박정희는 김재규에게 여전히 우월한 위치에서 훈계를 하고, 김재규는 그동안 쌓였던 감정을 억누르며 마지막 결단을 향해 나아간다. 이 장면은 두 인물이 더 이상 과거의 신뢰 관계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상징하며, 정치적으로는 암살이라는 비극적 사건의 클라이맥스이지만, 인간적으로는 갈라진 우정과 이념의 결말을 보여준다. ‘남산의 부장들’은 또한 박정희 체제의 구조적 문제를 통찰력 있게 보여준다. 권력은 한 사람의 절대 권위에 집중되었고, 주변 인물들은 그 권력의 눈치를 보며 생존을 도모했다. 이 체제는 필연적으로 내부 균열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고, 김재규의 선택은 그러한 균열의 극단적인 결과였다. 영화는 김재규의 암살이 옳고 그름을 논하기보다, 왜 그런 선택이 불가피했는지를 서사의 전개를 통해 천천히 설득해간다. 이는 단지 과거의 반성을 넘어서, 현재의 권력 시스템을 돌아보게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극적인 액션이나 긴박한 추격보다는, 정적인 화면과 대사, 인물 간의 심리적 밀당을 중심으로 긴장감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이는 관객에게도 끊임없는 해석을 요구하며, 인물의 시선과 말의 이면을 상상하게 만든다. 권력이란 결국 타인의 인정을 통해 유지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권력의 불완전성과 위험성을 반복적으로 환기시킨다. 또한, 이 작품은 인물의 감정을 쉽게 단정짓지 않고, 각자의 입장에서 선택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긴다. 김재규는 배신자인 동시에 체제의 희생자이며, 동시에 새로운 길을 모색한 인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복합성은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한 역사적 해석을 넘어, 인간 본성과 정치 권력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남산의 부장들’은 단지 박정희의 죽음을 재현한 영화가 아니라, 그 죽음을 통해 살아남은 자들이 남긴 권력의 상흔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잔상이 오래 남는 이유는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 속 인물들의 선택을 단순한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의 권력 구조와 인간관계를 성찰하게 된다. 결국 ‘남산의 부장들’은 정치 영화인 동시에 인간 심리 드라마이자, 권력의 철학을 묻는 사유의 영화다. 무엇이 충성이고 무엇이 배신인가, 권력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개인의 도덕성과 공적인 사명은 어떻게 충돌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깊은 사유와 논의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영화는 단순한 상업영화를 넘어선 정치적, 철학적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