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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로고스의 서론(2003)

by 취다삶 2025. 12. 8.

"요한복음, 로고스의 서론"은 신약성경의 네 번째 복음서인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그 독특한 시작 방식과 신학적 메시지를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둔다. 요한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과 달리 예수의 족보나 탄생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는 로고스 선언으로 시작된다. 이 선언은 단순한 문학적 장치가 아니라, 요한복음 전체의 신학적 기초를 이룬다. 본문에서는 요한복음의 서론 구조와 로고스 개념의 의미, 공관복음과의 비교를 통해 드러나는 신학적 차이, 그리고 예수가 행한 표적들과 그것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믿음의 메시지를 중심으로 요한복음을 깊이 있게 고찰한다.

 

요한복음, 로고서의 서론(2003) 포스터 사진
요한복음, 로고서의 서론(2003)

 

요한복음의 서론 구조와 로고스 개념

요한복음 1장은 신약성경 전체에서도 가장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서론으로 꼽힌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닌, 태초부터 존재했던 신적 존재, 즉 로고스로 정의한다. 여기서 ‘로고스’는 그리스어로 ‘말씀’, ‘이성’, ‘원리’를 뜻하며, 요한은 이 개념을 통해 예수의 신성을 강조한다.

로고스 개념은 구약의 창조 이야기(창세기 1장)와 연결되며, 신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했다는 신학적 진술을 다시 가져온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여기서 더 나아가,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말함으로써, 추상적 개념인 로고스가 구체적인 역사 속 인물인 예수 안에 실현되었음을 주장한다. 이는 기독교 신학에서 성육신의 개념으로 발전하며,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교리를 뒷받침하는 핵심 본문이 된다.

이러한 서론 구조는 독자에게 단순한 전기적 사실 전달이 아닌, 깊은 신학적 고찰을 요구한다. 요한은 복음서를 통해 예수의 생애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독자가 그분을 누구로 인식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규정한다. 예수는 단지 위대한 스승이나 기적을 일으킨 선지자가 아니라,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셨던 존재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또한 요한복음의 서론은 신성과 인성, 영원성과 시간성, 하늘과 땅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를 교차시키며 예수의 정체성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빛이 어둠에 비치된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는 구절은 예수가 세상에 왔으나 세상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음을 드러내며, 복음서 전체에서 반복될 주제 세상의 불신과 선택받은 자의 구원—를 예고한다.

요한복음 1장은 이러한 의미에서 서론이라기보다 신학적 선언문이며, 복음서 전체의 해석 키를 제공하는 본문이다. 로고스는 존재론적 신성과 구속사적 사명을 동시에 담고 있는 개념이며, 독자는 이 선언을 바탕으로 이후 예수의 모든 행위와 말씀을 해석하게 된다. 요한복음은 신앙의 기록이자 신학의 정수이며, 이 독특한 서론 구조는 복음서를 단지 이야기로 소비하는 것이 아닌, 깊은 묵상과 해석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신학적 차이

요한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과 구별되는 독특한 복음서이다. 이 세 복음서는 ‘공관복음’이라 불리며, 예수의 생애와 사역을 유사한 구조와 사건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다. 반면 요한복음은 서사 구조, 어휘, 신학적 강조점 등 모든 측면에서 차별화된다. 이 차이는 단순히 문체나 배열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는 데서 비롯된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예수의 자기 계시에 대한 방식이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제자들에게도 침묵을 요구하는 ‘메시아 비밀’의 구조가 반복된다. 반면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가 스스로 "나는 생명의 떡이라", "나는 세상의 빛이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등 자기 계시를 명확히 한다. 이는 요한복음이 예수를 메시지를 전달하는 자가 아니라, 메시지 그 자체로 그린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신학 차이를 드러낸다.

또한 시간 구조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공관복음은 예수의 사역을 1년으로 구성하는 데 반해, 요한복음은 최소 3년 이상의 기간을 전제하고 있다. 이는 유월절 언급 횟수 등에서 확인된다. 이러한 시간 구조의 차이는 단순한 연대기적 문제를 넘어, 예수의 사역이 얼마나 반복적이고 다양한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예수의 기적 또한 차별점이다. 공관복음에서는 수많은 치유, 귀신 추방, 자연 제어 등의 기적이 등장하지만, 요한복음은 7가지 ‘표적’만을 엄선하여 배치한다. 이 표적들은 단지 놀라운 일이 아니라, 예수가 누구인가를 드러내는 ‘사인’으로 기능한다. 이를 통해 요한은 기적 자체보다는 그것이 전달하는 신학적 메시지에 집중하고자 한다.

요한복음의 언어 역시 훨씬 추상적이고 상징적이다. ‘빛과 어둠’, ‘위에서 난 자와 땅에서 난 자’, ‘영생’, ‘진리’와 같은 개념은 단지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신학적 대립을 통해 독자의 내면을 흔들고 선택을 요구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는 요한복음이 단지 역사적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독자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차이들로 인해 요한복음은 종종 ‘신학적 복음서’라고 불리며,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신학 정립과 논쟁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신성과 인성, 믿음과 불신, 계시와 거부라는 복잡한 주제를 서사 안에 녹여낸 요한복음은, 복음서 중에서도 가장 해석학적 깊이를 요구하는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이 차이들은 단순한 다양성이 아니라, 복음의 다면성과 인간 이해의 다양함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예수의 표적과 '믿음'의 개념 전개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단순히 기적을 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표적’을 수행한다. 총 7개의 대표적인 표적이 등장하며, 각각은 예수의 신성과 사명을 계시하는 목적을 가진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첫 번째 표적은 그 자체로 잔치의 기쁨과 생명의 충만함을 상징하며, 단순한 변화를 넘어 새 창조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이는 요한복음 전체가 표방하는 주제인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과도 같다.

그 외에도 왕의 신하의 아들 고침, 베데스다 못에서 병자 치유, 오병이어로 수많은 무리를 먹이신 사건, 물 위를 걸으신 사건, 날 때부터 맹인 된 자를 보게 하심,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신 사건 등이 주요 표적으로 등장한다. 이 표적들은 단순한 이적이 아니라, 각각 믿음을 촉진하거나 불신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발생하며, 독자에게 신앙의 결단을 요구한다. 요한은 반복적으로 ‘믿으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표적을 통해 믿음이 어떻게 생성되고 깊어지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요한복음에서 ‘믿음’은 단순한 동의나 지적 수용이 아니라, 인격적 신뢰와 전인격적 응답을 의미한다. 예수는 자신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약속하며, 그 믿음이 곧 구원의 조건임을 강조한다. 이는 율법 중심의 구약적 패러다임과 대조되며, 복음의 본질이 행위가 아닌 믿음에 있음을 선언한다. 요한은 이러한 메시지를 다양한 인물의 반응을 통해 서사적으로 풀어낸다. 예를 들어, 니고데모는 밤중에 예수를 찾아와 대화하지만, 끝내 명확한 믿음의 고백을 하지 못한다. 반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를 만난 직후 자신이 만난 메시야를 마을 사람들에게 전파한다. 이러한 대조는 믿음이 계급, 성별, 인종을 초월하는 보편적 조건임을 강조한다.

요한복음은 ‘믿음’이라는 단어를 명사로 사용하지 않고, 항상 동사로 사용한다. 이는 믿음이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반응해야 하는 동적 관계임을 시사한다. 표적은 그 관계의 출발점이며, 예수는 독자와 관객 모두에게 그 표적을 통해 초청장을 보내는 셈이다. 요한복음은 독자에게 묻는다. “너는 이 표적들을 보고도 믿을 것인가?”

결론적으로, 요한복음은 표적과 믿음을 중심으로, 예수의 정체성과 독자의 반응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이는 단순한 신비 체험이 아니라, 신학적 질문이며 실존적 결단이다. 요한복음의 표적들은 독자에게 여전히 유효한 초대이며, 그 응답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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