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29번째 작품인 “토르: 러브 앤 썬더(Thor: Love and Thunder, 2022)”는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이 연출한 토르 시리즈의 네 번째 영화이자, MCU 내 최초로 단독 4편까지 이어진 히어로 시리즈입니다. 이번 작품은 코믹함과 감성, 그리고 액션과 로맨스를 모두 아우르며 마블 세계관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제인 포스터의 ‘마이티 토르’ 변신과 고르(Gorr the God Butcher)라는 강력한 빌런의 등장 등, 기존 팬들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캐릭터 변화를 통해 흥미로운 요소들을 더했습니다. 본 글에서는 ‘토르: 러브 앤 썬더’가 지닌 연출 스타일, 주요 캐릭터 아크, 그리고 서사적 메시지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타이카 와이티티의 유머 감각과 연출적 실험
“토르: 러브 앤 썬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요소는 바로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의 독특한 연출 스타일입니다. 그는 전작인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보여준 유머 중심의 접근을 이번에도 유지했으며, 그 수위를 더욱 높였습니다. 특히 이번 영화는 전통적인 슈퍼히어로 서사보다는 한 편의 음악 뮤지컬 혹은 코미디 드라마처럼 느껴질 만큼 연출이 자유롭고 실험적입니다.
먼저 사운드트랙의 사용에서 이러한 감성이 두드러지는데, 전설적인 록 밴드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음악이 반복적으로 삽입되며 전투 장면이나 주요 감정 장면에 강렬한 분위기를 더합니다. 특히 “Sweet Child O’ Mine”이나 “November Rain”과 같은 곡은 영화 전체의 정서를 주도하는 동시에, 80년대 하드 록 감성을 통해 히어로물의 무게감을 유쾌하게 덜어냅니다.
와이티티 감독은 캐릭터들의 대사와 행동에서도 코믹 요소를 적극 활용합니다. 토르 자신은 물론이고, 그의 무기였던 묠니르와 새로운 무기 스톰브레이커 간의 질투 어린 삼각관계는 전례 없는 설정으로 많은 웃음을 자아냅니다. 이러한 유머는 단순한 웃음을 넘어서, 토르라는 인물이 점차 신화적 영웅에서 인간적인 존재로 진화하는 과정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또한 카메라 워크와 색채 구성에서도 와이티티의 실험 정신이 돋보입니다. 일반적인 히어로 영화들이 어두운 톤과 차가운 색감을 주로 사용하는 반면, 이번 영화는 전체적으로 강렬하고 화려한 색감을 활용하며, 만화책을 연상시키는 과장된 비주얼이 자주 등장합니다. 특히 '쉐도우 렐름'이라는 고르의 세계를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색감을 모두 제거하여 흑백의 대비와 그림자를 이용한 시각적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실험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연출적 시도는 모두 ‘히어로 영화의 탈피’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즉, “러브 앤 썬더”는 단순히 또 하나의 MCU 액션물이 아니라, 그 장르 자체에 대한 해체적 접근을 시도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습니다. 타이카 와이티티는 토르라는 캐릭터를 통해 진지함과 유머, 신화성과 인간성을 동시에 아우르는 새로운 히어로 유형을 구축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MCU가 어떤 방식으로 캐릭터의 서사를 풀어나갈지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인 포스터의 마이티 토르 변신과 서사적 의미
이번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 변화는 바로 나탈리 포트만이 연기한 ‘제인 포스터’입니다. 전작들에서 토르의 연인으로 등장했던 그녀는 이번 영화에서 ‘마이티 토르(Mighty Thor)’로서 묠니르의 선택을 받아 새로운 토르로 거듭나며 서사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팬서비스가 아니라, 여성 캐릭터의 주체성과 서사적 중심성을 강조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제인은 천문학자이자 과학자로서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져 왔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암이라는 생사의 갈림길 앞에서 신의 능력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녀가 묠니르를 들어 올리게 되는 장면은 단순한 힘의 상징이 아니라,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의 인간적인 선택의 결과물로 묘사됩니다. 특히 그녀는 토르와 동등한 전투 능력을 갖추면서도, 신의 힘을 얻게 됨과 동시에 육체적으로는 점점 쇠약해져 가는 이중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러한 설정은 ‘힘’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제인은 물리적인 능력을 얻게 되었지만, 그 힘은 그녀의 삶을 지탱해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녀가 신의 무기를 사용할수록 육신은 더 빨리 소모되어 죽음을 앞당기게 됩니다. 이로써 영화는 단순한 파워 판타지를 넘어서, 진정한 영웅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특히 제인의 마이티 토르로서의 최후는 감동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그녀는 토르와 함께 마지막 전투에 나서며, 자신이 가진 생명력을 모두 소진하면서도 세상을 지키기 위해 싸웁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순간, 토르와 나누는 대화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와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자연스럽게 녹아납니다. 이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선, 인간과 신의 존재에 대한 진지한 탐구로 읽힐 수 있습니다.
또한 그녀가 죽은 뒤 발할라에서 깨어나는 장면은 죽음의 끝이 끝이 아님을 암시하며, 마블의 ‘다음 이야기’를 위한 여지를 남깁니다. 제인 포스터의 부활 혹은 스핀오프에 대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에서, 그녀의 서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MCU 내 여성 히어로 서사의 확장이라는 큰 틀에서 보았을 때, 제인의 변신은 또 다른 ‘페이즈’를 예고하는 신호탄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제인 포스터는 ‘희생을 감수하는 진짜 영웅’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로 자리매김합니다. 그녀의 마이티 토르화는 여성 캐릭터가 단순한 조력자나 연인이 아닌, 서사의 핵심이자 독립적인 히어로로 거듭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이는 MCU가 점차 다양성과 포용성, 그리고 진정성 있는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텔링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흐름을 잘 반영한 부분입니다.
고르(Gorr)라는 빌런의 탄생과 존재론적 메시지
‘토르: 러브 앤 썬더’에서 또 하나의 핵심 축은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빌런 ‘고르(Gorr the God Butcher)’입니다. 그는 MCU 내에서도 드물게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사연을 지닌 악역으로 평가받습니다. 고르는 처음부터 절대적인 악으로 등장하지 않으며, 그의 행동은 신들에 대한 배신감과 자신의 딸을 잃은 슬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한 설정은 단순히 권력을 탐하는 기존의 클리셰 빌런과는 다른, 존재론적 고뇌를 기반으로 한 캐릭터성을 구축합니다.
고르의 배경은 사막과 죽음뿐인 별에서 시작되며, 신의 자비를 기다리던 그는 결국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고 사랑하는 딸을 잃게 됩니다. 이후 우연히 ‘네크로소드’라는 무기를 얻게 되면서 신들을 죽이는 존재로 변모하게 되는데, 이 과정은 곧 인간이 신을 믿고자 했던 이유와 그 신념이 배신당했을 때 발생하는 극단적인 감정 변화를 상징합니다. 그는 단순한 살육자가 아니라, 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과 분노, 슬픔의 화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고르는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히어로 영화로서는 이례적인 신학적, 철학적 질문을 중심에 둡니다. 그는 신들이 인간을 위한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인간 위에 군림하는 무책임한 존재라고 확신하며, 그들을 제거하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길이라 믿습니다. 이러한 동기는 관객들에게 빌런의 시각을 이해할 수 있는 틈을 제공하며, 극의 몰입도를 더욱 높입니다.
고르카 마지막에 선택한 길 또한 인상적입니다. 그는 토르와 제인과의 대립 속에서도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복수’가 아니라 ‘사랑하는 딸의 부활’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딸을 부활시키고 스스로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장면은 악역의 구원 서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고르’라는 존재가 단순한 악이 아닌, 비극의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고르의 캐릭터는 관객들에게 ‘신이란 무엇인가’, ‘신은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마블 영화가 단순한 오락 이상의 철학적 탐구를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의 딸이 부활하며 토르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엔딩은 어둠 속에서도 사랑과 구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마무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영화는 빌런을 통해 진정한 영웅성의 의미, 용서와 회복의 가능성을 함께 제시하며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총평하자면, “토르: 러브 앤 썬더”는 단순한 히어로 액션영화를 넘어, 유머와 감성, 존재론적 질문을 아우르는 실험적인 시도였습니다. 타이카 와이티티의 연출 아래 토르는 더 인간적인 영웅으로 재탄생했으며, 제인 포스터와 고르의 서사는 각각 사랑과 상실, 희생과 구원의 메시지를 담아내며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마블 영화가 앞으로 어떤 서사를 펼쳐갈지 궁금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마블의 또 다른 색채를 경험할 수 있는 이 작품을 꼭 감상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