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지암(2018)’은 정범식 감독이 연출하고, 위하준, 박지현, 오아연 등이 출연한 한국 공포 영화로, 실제 존재하는 ‘곤지암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 파운드푸티지 스타일의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전통적인 한국 공포 영화가 귀신이나 원혼을 시각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달리, 시청자의 시선과 인물의 시점이 일치하는 카메라 워크를 활용하여 ‘직접 체험하는 공포’를 전면에 내세운다. 저예산, 비주류 배우, 단일 공간이라는 제한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200만 관객을 넘기는 흥행을 기록한 이유는, 그만큼 영화가 전달하는 공포의 방식이 새롭고 실험적이었기 때문이다. 곤지암은 ‘보는 공포’가 아닌 ‘당하는 공포’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작품으로, 한국 공포 장르에 있어 중요한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유령이 나오는 병원이라는 설정을 넘어서, 공포를 소비하는 관객과 제작자의 관계, 그리고 그 경계에서 벌어지는 윤리와 자극성에 대한 질문까지 확장시키며 메타적 서사 구조를 구축한다.

실제 폐병원을 배경으로 한 리얼리티 공포의 구조
‘곤지암’이 관객에게 주는 가장 강력한 인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를 모티브로 했다는 점이다. 경기 광주에 위치한 곤지암 정신병원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폐병원 괴담’의 발생지로 알려져 있으며, 영화 개봉 전부터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수많은 괴담과 영상이 유통되던 장소였다. 정범식 감독은 이 실존 장소의 도시전설을 극화함으로써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이야기’가 ‘사실처럼 보이도록’ 유도하는 데 성공한다. 영화 속 병원은 제작진이 실제 곤지암이 아닌 세트로 완벽하게 재현한 장소임에도, 촬영기법과 조명, 공간 배치, 음향 디자인을 통해 관객에게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느껴지는 리얼리티를 선사한다. 인물들이 병원에 입장할 때부터 카메라는 거의 끊김 없이 그들의 이동을 따라가고, 병원의 어두운 복도, 무너진 천장, 피가 튄 듯한 자국, 불규칙하게 깜빡이는 전등 등 모든 디테일은 관객이 실제로 그 공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영화의 공포는 주로 ‘기다림’과 ‘침묵’에서 비롯된다. 병원 내에는 귀신이 당장 튀어나오지 않지만, 관객은 언제 무언가가 나올지 모른다는 긴장 속에 몰입하게 된다. 이는 정적 공포(static horror)의 미학을 잘 활용한 예이며, 일본 공포 영화의 전통적 방식과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이때 영화는 인물들이 겪는 ‘심리적 압박’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하면서, 그 긴장감 자체를 공포의 방식으로 활용한다. 또한 병원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으스스한 장소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갖는 특정한 함의를 지닌다. 폐병원, 특히 정신병원은 우리 사회가 쉽게 잊거나 외면해 온 존재들—정신질환자, 폐쇄된 시스템, 의료 인권—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장소다. ‘곤지암’이 설정상 이 병원에서 무자비한 의료 실험이 있었다는 도시전설을 사용한 것도, 그러한 불편한 진실을 공포라는 장르로 포장하여 던진 것이다. 즉, 병원은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사회적 불안과 억압이 투영된 장소이며, 관객이 본능적으로 그 공간에 위화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다. 실제 존재하는 장소를 활용한 공포는 관객에게 이야기의 신빙성을 부여하고, 극장 밖에서도 그 공포가 지속되도록 만든다. 곤지암의 성공은 이처럼 픽션이 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장치와 서사의 힘에서 비롯되며, 이는 이후 한국 공포 콘텐츠에서 ‘실존 배경 활용’이라는 트렌드를 유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인칭 시점과 실시간 촬영의 감각적 효과
‘곤지암’의 가장 실험적이고 인상 깊은 요소는 바로 파운드푸티지(found footage) 형식을 적극 활용한 1인칭 시점의 공포 연출이다. 이 방식은 주인공들이 각자의 몸에 고프로(GO PRO) 같은 소형 카메라를 부착하고 병원을 탐험하는 구조로, 관객은 철저히 등장인물의 눈을 통해 사건을 바라보게 된다. 일반적인 공포 영화가 카메라를 통해 공포의 대상을 ‘제시’한다면, 곤지암은 시선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관객을 사건 속에 ‘끌어들인다’. 이 방식의 핵심은 몰입과 감정 이입이다. 관객은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복도를 걷고, 문을 열며, 낯선 소리에 놀라고, 어두운 공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이는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에 가깝다. 특히 영화는 편집과 음향 효과를 최소화하며, 실제 방송 중계처럼 리얼타임에 가까운 흐름을 유지한다. 이로 인해 일반적인 영화보다 느린 템포를 유지하지만, 그만큼 관객의 긴장도는 더 오래, 더 깊게 유지된다. 또한 카메라가 흔들리고 초점이 맞지 않거나, 갑작스럽게 끊기는 등의 요소는 ‘불완전한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불안을 증폭시킨다. 이는 실제 공포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하게 정보를 인식하는지를 영화적으로 구현한 방식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인물이 갑자기 소리 지르며 카메라가 넘어가면, 관객은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공포의 실체를 상상해야 한다. 이 상상력은 오히려 실제 귀신이 등장하는 장면보다 더 강한 공포를 유발하며, 곤지암의 공포가 시청자의 ‘심리적 반응’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영화의 전개가 방송 콘텐츠 제작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등장인물들은 ‘호러 타임즈’라는 인터넷 방송 채널을 운영하며, 곤지암 정신병원에 입장해 ‘공포 체험’을 생중계한다. 이 설정은 곧 영화의 내러티브 자체가 ‘실시간 시청’이라는 형식적 틀 안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의미하며, 공포와 방송, 콘텐츠 소비가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보여주는 메타적 장치로 작동한다. 이 지점은 다음 소제목에서 더 깊이 있게 다루게 될 메타비평의 핵심이기도 하다. 1인칭 시점은 또한 ‘감정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도 효과적이다. 등장인물들이 겁을 먹고 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이며, 누군가를 부르며 울부짖을 때, 관객은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감정에 이입된다. 이는 일반적인 카메라 앵글로는 절대 구현할 수 없는 방식이며, 공포 장르가 관객의 ‘신체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방법으로서 탁월하다. 곤지암은 이를 통해 공포를 시각적 자극이 아닌 ‘체험적 공포’로 확장시켰으며, 이는 한국 영화에서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방향성이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곤지암’의 파운드푸티지 방식은 단순한 형식적 장치가 아니라, 영화의 공포 구조와 내러티브 전개, 감정 이입의 전반적인 틀을 형성하는 핵심 전략이다. 이 방식은 이후 다양한 유튜브 콘텐츠, 공포 체험형 게임 등과 결합되며, 대중의 공포 경험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데 기여했다.
공포 콘텐츠 산업에 대한 자조와 메타비평
‘곤지암’은 단순히 병원에 들어가 귀신을 만나고 공포를 겪는 이야기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공포를 상품화하는 사회’에 대한 자조적인 시선과 메타비평이 담겨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호러 타임즈’라는 인터넷 채널 운영자들이 공포 체험 콘텐츠를 통해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계획적으로 공포를 연출하고, 시청자의 반응을 끌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실제로는 병원 안에 가짜 소품을 설치하고, 특정 멤버에게 ‘몰카’를 시도하며, 공포를 조작한다. 이 설정은 현재 유튜브나 SNS 상에서 소비되는 ‘체험형 공포 콘텐츠’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즉, 영화는 공포가 어떻게 상업화되고, 자극적 콘텐츠로 변질되며, 그 과정에서 윤리적 경계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드러낸다. 실제로 등장인물 중 일부는 단지 인기와 수익을 위해 위험한 상황에 자발적으로 뛰어들고, 어떤 인물은 자신의 공포심을 감추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기도 한다. 이는 공포를 ‘느끼는 감정’이 아닌, ‘팔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장치다. 더 나아가 영화는 공포 자체보다 ‘공포를 즐기는 사람들’을 겨냥한다. 곤지암은 귀신보다 무서운 것이 ‘사람의 욕망’이라는 점을 여러 장면에서 암시한다. 실제 귀신의 정체는 끝까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으며, 인물들은 대부분 공포를 조작하려다 진짜 공포에 휘말리는 방식으로 파멸한다. 이 과정은 마치 ‘공포를 만든 자가 그 공포에 삼켜지는’ 구조로서, 공포 콘텐츠 산업의 자기 파괴적 성격을 은유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제작자는 모든 영상을 회수하지 못하고, 일부 영상이 인터넷에 퍼진 채 남게 되는데, 이 장면은 ‘공포는 결국 계속 소비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즉, 영화는 공포가 끝났다고 믿는 순간에도, 그 콘텐츠는 계속해서 다른 누군가에 의해 소비되고, 유통되며, 반복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이는 곧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 불멸성’과도 연결되며, 우리가 공포에 중독되는 사회에 대해 자조적으로 경고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곤지암은 관객이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웃거나 놀라게 만들지만, 영화가 끝난 뒤 남는 감정은 단순한 ‘무서움’이 아니라 ‘불편함’이다. 이는 공포의 소비 자체가 갖는 윤리성에 대한 질문이며, 우리가 즐기는 공포가 누군가의 고통이나 착취에 기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성의 계기를 제공한다. 영화는 이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지만, 모든 장치와 서사 구조는 관객 스스로 그러한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곤지암’은 공포 콘텐츠 산업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을 담고 있으며, 장르영화로서의 완성도를 넘어서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이 작품은 한국 공포 영화가 단순히 ‘무섭게 만드는’ 영화에서 벗어나, ‘공포를 통해 사회를 말하는’ 영화로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곤지암(2018)’은 리얼리티 공포, 체험적 시점, 메타적 비판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한국 공포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다. 단순히 무섭기만 한 영화가 아니라, 공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소비 방식, 윤리적 태도까지 되묻게 만드는 이 영화는, 장르적 실험성과 사회적 성찰을 동시에 담아낸 진정한 의미의 ‘공포 영화’라 할 수 있다.